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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겨울수련회] 실패한 구원자, 실패하지 않은 구원

실패한 구원자, 실패하지 않는 구원, 사사기 14:3-4



삼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사 시대 중에서도 가장 타락하고 어두웠던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더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블레셋의 통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15:11), 블레셋 사람들과 결혼도 하며 가까이 지냅니다(14장). 블레셋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평화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자 왜 그런 일을 했냐며 삼손에게 따져 물었습니다(15:1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고 찾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고, 그들을 구원할 사사를 예비하여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삼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평생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전혀 구별되지 않았던 시대에, 삼손은 선명하게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삼손의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태양이라는 의미의 ‘삼손’이라 부른 것도 그런 기대를 담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비하시고 구별하신 이 아이가 칠흑같이 캄캄한 세상을 환히 비쳐주는 태양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며,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할(13:5) 사사가 되길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삼손의 비범한 출생(수태고지)과 평생 나실인으로 구별된 것, 그가 자라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고, 성령님이 그 위에 임하셨다는 말씀은(13:24-25) 삼손이 과연 그런 훌륭한 사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삼손은 시작부터 이 모든 기대를 저버립니다. 그는 한 블레셋 여성을 보고 반하여 부모님께 가서 당장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삼손의 부모는 당연히 반대합니다.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 즉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며 자기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어떻게 결혼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막무가내입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14:3)라고 조릅니다.


여기서 ‘좋아하다’라고 번역된 말은 흔히 ‘좋아한다, 사랑한다’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옳다(right), 좋다(good)’라는 의미르 가진 단어입니다. 사사기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17:6; 21:25 참고)는 말씀에서 ‘옳은대로’라고 번역된 단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음으로 각자가 왕이 되어 자기 눈에 좋은대로,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행하였는데, 한 눈에 반한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려는 삼손의 행위가 바로 그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좋은지, 옳은 것인지도 상관 없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이 여자가 좋으니 이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어지는 말씀은 이 일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둘 사이의 틈을 만들어 블레셋을 치려는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14:4). 마이클 윌콕이라는 학자는 “14장 4절의 요점은 두 공동체가 매우 결속되어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삼손의 약점을 이용하셔서 매력적인 여자와 관계를 형상하게 하시고, 그 관계로부터 양측 간에 악감정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 ‘삼손이’라는 부분은 본래 3인칭 남성 단수 대명사의 번역인데, ‘삼손’과 ‘하나님’ 둘 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주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삼으려고 이 일을 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 개역한글 성경은 마치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 일을 행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데요, 보다 문맥에 맞게 번역하면, 삼손은 그저 한 눈에 반해서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삼손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까지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실 것을 계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을 길게 설명한 까닭은, 14장 3-4절이 삼손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즉 삼손은 계속해서 자기의 욕망과 감정에 따라 행합니다. 삼손은 계속해서 블레셋 여자에게 빠져 지내고,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죽인 것은 그의 복수를 위한 것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도 삼손은 블레셋 사람에게 단번에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사사로서의 사명감이 전혀 없는 사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부정한 것을 만지는 일에 어떤 거리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나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실인 규례 중 유독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자신의 초자연적인 힘의 비결이 머리카락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의 능력은 머리카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밀린 후에도 삼손은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블레셋을 무찔러야지 하고 일어섰는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16:20)고 말씀합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에게 잡혀 두 눈이 뽑힌 채로 감옥에 갇혀 맷돌을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의 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삼손은 하나님께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힘을 주셨고, 그는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블레셋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죽임으로 블레셋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삼손은 사사로서의 사명감이 조금도 없었고, 나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중요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태양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정욕에 눈이 멀어 ‘들릴라’라는 어둠에 삼켜져 블레셋의 비참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차질없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13:5)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삼손은 블레셋의 많은 통치자들과 백성들을 죽임으로 블레셋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이어지는 세대인 사무엘과 다윗을 통해 블레셋으로부터의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비록 삼손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구별된 나실인으로 택함을 받은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사사시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격 없는 삼손과 끝까지 함께 하시며 힘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구원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잃지 않으셨고, 죄악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삼손의 이름을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명단에 거리낌 없이 기록하였습니다. 수많은 죄악으로 얼룩지고,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지막 순간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히 11:6). 삼손은 바로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성도의 견인(인내)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이유를 삼손의 삶이 잘 보여줍니다.


삼손과 같이 우리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며 살도록 구원을 받았습니다(엡 1:4-6). 나실인(구별된) 삼손(태양)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는 작은 빛으로 살도록 택함받았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삼손처럼 우리도 죄 많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삼손보다 훨씬 위대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어둡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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