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야곱이 에서의 복을 가로챘어요
본문: 창세기 25장 19-26절, 27장 1-45절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세웁니다. 그 일이 크고 중요한 일일수록 더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일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항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불가피하게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비틀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생활계획표를 만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항상 계획표대로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 안팎에서 일어나고 그럴 때 우리가 계획하고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께서도 영원 전에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계획(작정)하셨습니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 간에 우리의 구원을 의논하셨고 범죄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역사 가운데 계시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과 그들이 거할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의 씨라고 부르신 한 후손을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지키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계획: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이뤄지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임신했을 때, 그 둘이 리브가의 태 속에서 싸우므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나아가 이 일이 어찌된 일인지 물었고 그때 하나님은 그들과 관련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복을 큰 자 에서가 아니라 작은 자 야곱에게 허락하시고 그를 통해 언약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인 에서가 아니라 동생인 야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을 따라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기도 전에 야곱을 사랑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셨으며,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드러난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사실 이후 이삭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즉 이삭의 가족 모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계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집의 주인이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설계도를 그려 놓았는데,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그 설계도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만약 집 주인이 이런 사람들에게 집을 건축하도록 맡긴다면, 집은 설계도를 따라 잘 완성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그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도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복과 구원은 그 누구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 아닙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거나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삭 가정의 역행
27장은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제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았고 자신의 상속자를 세워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자신에게 주셨던 복과 언약을 이어 받을 후계자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누구를 언약의 상속자로 세워야 합니까?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태에 있을 때, 이미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야곱이 아니라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삭은 당시 사회적인 통념에 의해 첫째 아들인 이삭을 언약의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사냥에 능숙했던 에서를 이삭보다 더 편애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보다 앞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마음에 잘 간직하지 못했고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들로 나가 사냥을 하여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에서를 마음껏 축복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이때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는 것을 엿듣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가 주고 받는 말을 듣고 이삭의 말처럼 에서가 복의 상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야곱으로 하여금 언약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집에서 기르는 염소 새끼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야곱이 이삭에게 드리고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축복을 차지하라는 어머니의 말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자신은 피부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삭이 만져보면 금방 정체가 탄로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리브가는 말하기를,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가서, 두 마리를 끌고 오너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후 야곱이 가져온 염소 새끼로 별미를 만든 리브가는 에서의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둘러 주었습니다. 야곱의 정체가 이삭에게 탄로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왜 리브가는 이렇게까지 해 가며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한 것입니까? 리브가는 자신이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복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리브가의 동기와 목적은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과 방법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라고 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리브가는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축복을 얻도록 그를 부추겼습니다. 이것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에서인 것처럼 아버지 이삭에게 나아갔습니다. 야곱이 “아버지”하고 부르자 이삭은 “너는 누구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거짓말입니다. 이삭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냥거리를 찾았느냐”고 묻자 야곱은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저를 도와주셨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심이 풀리지 않았던 이삭은 그를 가까이 오게 하여 이삭을 만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야곱과 리브가는 이미 이런 일까지도 대비해 놓았습니다. 야곱의 손과 목에는 염소새끼 가죽이 둘러져 있었고 그것을 만진 이삭은 그가 에서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삭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 에서냐?” 야곱은 다시 한 번 거짓으로 대답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결국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별미를 먹고 그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8-29)
이렇게 하여 야곱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복을 받아내었습니다. 야곱이 나간 후 사냥을 하러 나갔던 형 에서가 돌아옵니다. 에서도 별미를 만들어 그것을 들고 아버지 앞에 가서 자신에게 마음껏 축복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삭은 모든 일의 전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크게 충격을 받고 떨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오기 전에 나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 온 게 누구란 말이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그것을 이미 다 먹고, 그에게 축복하였으니, 바로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다.” 이삭은 그때에서야 하나님께서 오래 전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셨던 말씀을 분명하게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자신의 계획과 뜻을 보이셨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고집한 일이 그의 가정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한편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에서는 소리치며 울면서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이런 에서의 모습만을 보면 에서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의 복을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전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넘긴 적이 있습니다(창 25:29-34). 하나님께서 열조에게 약속하신 복을 팥죽 한 그릇만도 못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삭에게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라고 애걸하는데, 이는 에서가 하나님께서 열조에게 약속하신 복 이외에는 다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약속과 복에 대한 진지한 열망과 믿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삭 가정의 역행에도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만약 리브가와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실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다렸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렸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모든 일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과 리브가, 야곱은 그렇지 못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어요.
이 사건 이후 이삭의 가정에는 폭풍이 몰아칩니다. 야곱을 향한 에서의 원한은 깊어갔습니다. 그는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야곱은 집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자기 오빠가 거주하던 하란으로 야곱을 피신시킵니다. 에서의 분노가 풀리면 돌아오라는 전갈을 보내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리브가의 기대와는 달리 리브가는 야곱을 다시 보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야곱은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낯선 땅으로 떠나갑니다. 가장이었던 이삭은 이 모든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삭의 무지와 고집, 리브가의 조급함과 술수, 야곱의 야비한 성품, 에서의 불신앙과 망령됨이 이삭의 집에 이와 같은 비참한 결과를 불러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받고 그 복을 풍성히 누리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주님께서 계신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완전히 그리고 충만히 누릴 때까지 우리는 소망 중에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잘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복되게 만들기 위해 인간적인 꾀와 수를 쓰지 말고 하나님의 의지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삭 가정의 죄와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었고 하나님의 계획은 결국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하고 고집스러운 이삭, 조급하고 술수를 사용하는 리브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거짓말을 했던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었습니다. 이삭 가정의 죄와 악함이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은 이삭 가정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은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이처럼 허물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며, 그들의 죄와 연약함을 뛰어넘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했고 의지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실패로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복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이뤄질 것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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