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이라는 뜻이에요.
본문: 창세기 32-33장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
형 에서의 복을 가로챈 후 야곱은 형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인 하란으로 향하는 야곱은 날이 어두워지자 한 곳에서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돌을 가져다가 베개를 삼고 잠을 청했는데, 그때 그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보니 한 층계가 땅에 세워져 있는데,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고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층계 위에 서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후 야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란을 향해 나아갔고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을 만나 그의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야곱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라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 결혼을 하고 열 두 명의 자녀를 얻었으며, 많은 재물과 가축들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는 억울한 일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야곱과 함께 하시며 야곱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란에서 생활한 지 20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야곱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모두 모아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이처럼 하란에서 나오는 야곱의 모습은 20년 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20년 전 야곱은 겨우 지팡이 하나를 들고 단신으로 왔지만, 이제 야곱은 많은 가족들과 종들 그리고 많은 가축과 재물과 함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하지만 가나안 땅에 가까이 갈수록 야곱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왜냐하면 형 에서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형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형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 형은 날 용서했을까? 혹시 지금도 계속해서 날 원망하며 복수하려고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아버지와 형에게 한 일은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였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나를 무사히 돌아가게 해 주실까? 하나님께서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실까? 혹시 하나님께서 내가 지은 죄 대문에 나를 형의 손에 붙들려 죽게 하시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을 때, 야곱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전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전한 말은 이런 것입니다. ‘제가 형님의 종이 되어서 형님을 주인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전한 소식을 들은 에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에서에게 다녀온 야곱의 종은 에서가 자신의 종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말에 야곱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7절을 읽어봅시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야곱은 어쩌면 자신이 20년 동안 수고하여 쌓은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가축과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무엇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도 침묵하셨습니다.
바로 이때에 야곱이 한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가축들을 두 떼로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축 떼를 두 떼로 나눠서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 떼라도 도망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사실 대책이라 하기에는 너무 허술한 대책입니다. 그리고 나서 야곱은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러지는 말씀을 보면 기도 후에도 야곱은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야곱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형에게 선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암염소 이백 마리, 수염소 이십 마리, 암양 이백 마리, 수양 이십 마리, 약대 삼십 마리와 그 새끼, 암소 사십 마리,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이십 마리, 나귀 새끼 열 마리를 세 떼로 나눴습니다. 이것 역시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짐승들을 세 떼로 나누어서 형에게 차례로 보내면 형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질지 모른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야곱은 두려웠고 답답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형에게 세 떼의 예물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더 지내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밤중에 두 아내와 두 여종 열한 명의 아들들을 다 깨워 얍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또한 자신의 남은 소유까지도 다 건너가게 했습니다. 이제 야곱 혼자 그곳에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여전히 두렵고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 위한 방법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씨름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어 야곱과 씨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꺾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꾀와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고 복을 얻어내려 하는 야곱을 꺾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 없이는 그가 얼마나 무능한 자인지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끝까지 자기 뜻과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식을 신뢰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야곱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자신의 힘으로 형을 이기고 먼저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호시탐탐 형의 장자권을 노려서 붉은 죽으로 형의 장자권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또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얻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발꿈치를 잡다’라는 그의 이름은 이런 야곱의 성격과 태도를 잘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주의 사자는 야곱의 환도뼈(허벅지뼈)를 쳐서 그 뼈가 어긋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기려하는 야곱의 허벅지 뼈를 치셨고, 야곱의 모든 힘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스스로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환도뼈를 다쳐 다리를 절게 된 야곱은 에서에게서 도망도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날이 밝고 하나님의 사자는 떠나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고 나면 이제 야곱은 정말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자가 이대로 가버린다면 야곱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야곱은 하나님을 이기고 자신의 힘으로 이 상황을 해결해보겠다고 하는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사자를 꽉 붙잡았습니다. 하나님만을 꽉 붙잡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신의 이름처럼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복되게 하고 구원하기 위해 붙잡는 자로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야곱은 자기 힘을 의지하고 자기 힘으로 복을 쟁취하기 위해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꽉 붙잡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이제 야곱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하나님께 울면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지셨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힘과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얻어내고 스스로를 구원해보겠다는 생각을 다 포기했을 때,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했을 때, 오직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복을 주실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간절히 울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기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구하는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복을 주시기 전에 야곱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무엇으로 바꿔주셨을까요?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이 자신의 힘과 꾀로 복을 얻어내려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는 이름이라면,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주께 복을 얻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셔서 야곱과 훗날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힘과 꾀로 하나님을 이기고 복을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한 번 치셨을 때에 그대로 고꾸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은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의지할 때 하나님은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구한 복을 주셨고, 형 에서의 손에서도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교훈과 적용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결코 우리 자신을 복되게 할 수 없고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또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도 없고, 어떤 선한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하세요.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고 부드럽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가 다른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복을 주실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얻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여러분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복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구주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복과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과 구원을 주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복과 구원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져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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