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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구약 1-4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렸어요

주제: 가인의 죄가 그를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갈라놓았어요

본문: 창세기 4장 1-17, 25-26절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는 아담과 아담 안에 있던 우리 모두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영향을 우리는 “단절”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누리던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와 사귐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직후,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보여준 그의 모습이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아담이 범죄치 아니하였을 때, 아담에게 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마음 설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후, 하나님의 낯을 뵙는 일은 그의 마음을 매우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 형벌에 대한 공포가 아담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직후에, 아담과 택하신 인류를 구원하실 구원의 계획을 계시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미혹했던 뱀(사탄)에게 저주를 선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하나님은 뱀(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대심을 심으시고 그 둘이 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라 부르신 한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오면 그는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라 부르신 한 구원자를 보내시고 죄와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까요? 믿었습니다. 아담은 이 말씀 후에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합니다. 하와의 이름의 뜻은 ‘생명’입니다. 아담은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의미로 여자의 이름을 그렇지 지은 것입니다(20절). 하나님은 죄의 형벌로써 모든 인간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19절)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통하여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여자의 후손”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 사이에 자녀들이 태어날 때마다 ‘혹시 이 아이가 구원자일까?’하는 기대를 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자녀들은 부모와 같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 있었던 비극적인 일은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세월이 지난 후 아담의 두 자녀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땅에서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아벨이 바친 예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예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를 히브리서 11장 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아벨의 예배와 가인의 예배의 가장 큰 차이는 “믿음”에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는 자기 의와 노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벨이 양을 예물로 바치기까지 수고하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벨도 양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기까지 많은 수고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벨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수고하여 하나님께 드린 예물도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이심을 믿었습니다(히 11:6 참조). 자신과 자기 예물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자기를 바라는 자에게 은혜 베푸시는 분임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예배를 열납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믿음 없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가인이 불신자였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가인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인이 믿음 없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가인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데도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인이 믿음 없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가인이 자신의 노력과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예배 드렸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와 자기 노력을 의지하여 예물을 바쳤습니다. 물론 가인은 예물로 바친 곡식을 거두기까지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 같은 잡초를 내었고 그것은 가인을 더욱 수고롭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수고하여 드린 예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셔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아닌 자기 노력과 의를 의지하여 드린 가인의 예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수고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을 받으셔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아무리 많은 수고를 했다 할지라도 그의 수고로 얻은 곡식은 죄로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인은 죄인이요 그가 바친 예물도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이 수고하여 드린 예물을 받으셔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시고 자신과 자신이 드린 제물을 받지 않으시자 그는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6절, 새번역)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인이 믿음으로 예물을 바쳤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그 예물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경고도 해 주셨습니다.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7절, 새번역) 이렇게 하나님은 가인이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그를 찾아가 말씀하셨지만, 하나님께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가인은 아벨을 사람이 없는 들로 데리고 가 그곳에서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악한 자” 사탄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뱀의 후손에 속한 자였던 것입니다. 가인은 뱀의 후손에 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가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모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가인에게는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아무렇지 않게 ‘모른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있습니다. 가인이 죄를 다스리지 못했을 때, 죄가 가인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이제 가인은 죄 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되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인에게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수고가 더 이상 효력이 없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입니다. 수확을 하기 위해 열심히 수고를 하겠지만, 더 이상 땅이 가인을 위해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으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이전까지 가인은 자기가 열심히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 땅은 당연히 자기를 위해 열매를 내고 자신은 수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사실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가인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에 대해 가인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가인은 하나님꼐서 자신에게 내린 벌이 자신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불평합니다(13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보복을 받게 될까봐 걱정합니다. 가인의 관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감추려했던 추악한 죄를 드러내시고 벌을 내리시는 과정 속에서도 회개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아벨을 읽은 자기 부모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자기 자신의 안위에만 치우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인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는 표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가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가 한 일은 하나님과 가족(교회)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16절) 하나님께서 가인의 등을 떠밀어 쫓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제 발로 하나님과 가족들로부터 떠났습니다. 이처럼 가인의 죄는 그를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갈라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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