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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구약 2-5 금송아지를 만들었어요

최종 수정일: 6월 10일

주제: 하나님은 금송아지를 섬긴 하나님의 백성을 벌하셨어요

가스펠 링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세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고,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서 주셨어요

본문: 출애굽기 32:1~35, 34:1~9

요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도착하여 산 앞에 장막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모세를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는 이스라엘을 이끌어내라고 하셨을 때, 모세는 자기가 무엇이라고 그런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출 3:11). 그때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2).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지 세 달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보내신 중보자임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데에는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 맺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식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우 두렵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날 아침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창 19:16). 그리고 연기가 자욱한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불가운데 강림하셨고 온 산은 크게 진동하였습니다(창 19:18).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산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4:12). 올라오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하신 돌판을 그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기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 지니라 하고(출 24:14)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진노

이렇게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간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모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모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세는 시내산으로 올라가면서 언제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길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광야로 인도한 하나님의 종 모세가 혹시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닐까?’, ‘혹시 무슨 사고라도 일어난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이 광야에서 어떻게 해야하지?’하는 불안함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요구하기에 이릅니다(1절).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신은 다른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좀 더 적극적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들의 중보자 모세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주면 안심이 되겠다는 요구였습니다.


아론은 이런 백성들의 요구가 한 편으로는 옳은 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가져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그 귀에 단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 가져왔습니다. 백성들의 이런 모습은 매우 헌신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여하튼 아론은 백성들이 가져온 것들을 받아 녹이고 조각칼로 다듬어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왜 하필 송아지의 형상이었을까요? 아마도 이스라엘 민족이 머물렀던 애굽 사람들의 우상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송아지 형상을 완성한 후, 아론은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론은 그 앞에 제단을 만들고 그 다음 날을 “여호와의 절일”로 선언합니다. 즉 지금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찌기” 일어나서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았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매우 열정적인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잘 예배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렇게 온 마음과 힘과 소유를 가지고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도 기쁘게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흡족한 예배를 드렸다고 하여서 하나님께서도 그 예배를 흡족하게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과 얼마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계명을 알려주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귀를 막고 자기 스스로 좋다고 여겨지는 방식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헥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대로가 아닌 자기 생각대로 드리는 예배와 삶은 더 이상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예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예배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진영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그들이 “부패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귀를 막고 하나님의 교훈을 들으려 하지 않고 돌이키려 하지 않는 그들의 상태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시며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다시 하나의 큰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중보와 하나님의 돌이키심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를 쏟으시고 심판하려고 했다면, 모세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즉각적으로 처분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모세에게 미리 예고를 하실 필요도, 모세의 동의나 의견을 들으실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모세의 중재만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하신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지만,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것처럼, 그들이 모세의 백성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은 중보자로서의 모세의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할 이는 모세뿐인 것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에게 하나의 시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를 퍼부으셔서 그들을 진멸하셔도 모세는 손해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모세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이름만큼 크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모른 척하고 ‘네, 하나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당해도 마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기 자신의 편리와 명성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복과 구원을 더 간절히 원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보자로서 합당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중재하였습니다. 그것이 11-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모세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기적들로 친히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아뢰었습니다.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11절)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시 그들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이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손으로 인도하여 내셨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은 이들의 아버지가 되시지 않으십니까?’라고 기도합니다.


또 1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호소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귀중한 존재였기에 모세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진멸하신다면 애굽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죽이려고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오니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그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시고 온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주실 때에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기에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바로 이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맹세로 하신 약속이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신 것을 의지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세의 중보 끝에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십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4절)

     

모세보다 뛰어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음란히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의 중보가 필요함을 은연 중에 알리시며, 이스라엘을 모세의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소유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들에게 화를 내리지 말아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맺은 언약을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훌륭한 중보자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욱 사랑하고 즐거워합니다. 나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향해 진노하셔야 하고,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를 진멸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모세보다 더 뛰어난 중보자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가 예표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들의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참으로 사랑했던 좋은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모세보다도 훨씬 더 그의 백성된 우리를 사랑하시는 더 좋은 중보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를 보시고 우리를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하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代言者)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우리에게 이처럼 좋은 중보자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실망을 안겨드릴 때마다 이와 같은 중보자가 우리에게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를 지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중보자의 기도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이시니,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며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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