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벌하신 뒤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우셨어요
가스펠 링크: 예수님은 죄를 지어 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어요.
본문: 여호수아 7-8장
요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4-15)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한 방식은 특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주위를 매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장 일곱 명이 양각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했습니다. 일곱째 날, 그들은 일곱 바퀴를 돌았고 “외치라”는 여호수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때 여리고 성은 무너져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으로 들어가 그 성을 정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특이한 방법으로 가나안 땅의 첫 성을 정복하게 하신 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싸움임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치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하신 약속을 지키시며 그들과 함께 나아가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아간의 범죄와 전투에 미친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7장은 “그러나”라는 말과 함께 시작합니다.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7장 1절을 읽어봅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습니다. 여리고 성과 그 가운데 모든 거민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바친 물건”이란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셔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진멸하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시도록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리고 성과 그 모든 거민들과 소유가 다 하나님께 바쳐진 바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을 철저하게 진멸해야 했고 그것들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당시 여호수아도 그 점을 누차 강조했습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수 6:18) 그러나 아간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것에 손을 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만 여기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자손들 전체의 범죄로 여기셨습니다. 분명 바친 물건을 훔친 것은 아간이라고 하였는데, 1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다고 말하고 있고 “여호와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사람이라도 개인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몸의 지체와 같이 함께 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훔친 것은 아간 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간의 범죄는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뼈아픈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그들의 행진의 다음 목표였던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정탐들은 보고하기를,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라고 보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온 이스라엘 군대를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려보내면 쉽게 그 성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탐들의 이러한 보고는 정확한 보고였습니다. 그 성의 전체 인구는 일만 이천명이었고(수 8:25), 작은 성이었습니다.
정탐들의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대로 삼천 명 정도의 군대를 보내어 그 성을 점령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아이 성 군대에게 패하여 약 36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쫓겨 내려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36명이 죽은 것이 무슨 대수인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매우 큰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패했고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이 성보다도 훨씬 더 큰 성을 정복하고 큰 승리를 거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하고 뼈아픈 패배를 당해야 했습니까? 이스라엘 군대의 수가 적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호수아의 전략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이스라엘 패배의 가장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에서 승리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나아가셨기 때문이고 아이 성에서 패배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싸우지 않으셨습니까? 아간의 범죄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아이 성에서 패배한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저녁 때까지 있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슬픔 속에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수 7:11-12)
이튿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 제비를 뽑았는데, 유다 지파가 뽑혔습니다. 여호수아는 유다 지파 가운데 가까이 오게 하였고 다시 제비를 뽑았는데, 유다 지파 가운데 세라 족속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세라 족속의 남자들을 가까이 오게 하여 제비를 뽑으니, 아간이 뽑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제비를 통해 아간을 지목하셨습니다.
더 이상 아간은 자신의 죄를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일을 자백했습니다. 아간은 자신이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들을 자신의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고 특별히 은은 그 밑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간의 죄는 무엇입니까?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탐내었습니다. 사실 전쟁의 관례에 따르면 정복한 자들은 자신이 정복한 땅의 것들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전리품이라고 말합니다. 아마 아간도 자신이 승리자로서 여리고 성의 물건들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아간은 정복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성을 무너뜨리시고 승리를 가져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전리품을 “바친 물건”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들을 진멸하거나 하나님의 곳간에 바쳐야 한다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자신에게도 전리품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만”입니다. 그 교만은 탐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탐심은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도둑질(불순종)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도둑질 했고 그것을 숨겼으며 거짓말하였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지었고 그것이 행위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점에서 우리도 아간과 같습니다. 우리도 아간과 같이 마음으로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교만은 내것이 아닌 것에 대한 탐심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그런 우리의 교만과 탐심을 겸손히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이 행위로 드러나기 전에 죄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마음의 교만과 탐욕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도 아간과 같이 범죄하고 그 악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아들게 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수치와 고통, 사망이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사자를 아간의 장막으로 보냈고 감추어져있던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23절은 그 장면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에 대한 탐욕을 따라 그것을 취했고 자기 장막 은밀한 곳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아간은 훔친 물건을 자기 장막 밑에 숨긴 후 모든 사람을 완전히 속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완전범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간은 하나님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비를 통해 아간을 지목하셨고 그의 장막 아래에 숨겨진 은밀한 죄를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앞에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전모를 드러내셨을 때,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가 훔친 물건들과 아간의 아들들과 딸들(아간의 죄를 방관했던), 그의 모든 소유를 다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그를 처벌하였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간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로 치고 불살랐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과 그의 가족과 재물을 향해 던져서 만들어진 큰 돌무더기는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장소는 매우 유명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곳을 사람들은 “아골 골짜기”라고 부르는데, 아간이 행한 일로 인해 큰 괴로움을 겪었다는 뜻으로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의미의 “아골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간의 죄를 다룬 이후에야 비로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맹렬한 진노를 거두셨고, 이후 이스라엘은 아이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습니다.
교훈과 적용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싸우지 않으셨다. 힘이 부족하거나 전략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아이성 보다 더 큰 성 여리고 성을 이긴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서 패배한 것은 아간이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시고 그들과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보고 그것을 자신이 가질 수 있고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탐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저 시날땅의 아름다운 외투, 은과 금덩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그 탐심은 도둑질이라는 두드러진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아간은 자신의 탐심과 도둑질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도둑질 한 것을 자신의 장막 아래 감춘 것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아간은 자신의 마음이 교만과 탐심에 사로잡혔을 때, 그 즉시 그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백하여 은혜를 구해야 했는지만, 그렇게 하는대신 자신의 악한 탐욕을 좇아 그 다음 행동을 했습니다. 그때 아간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약 1:13-15).
이것은 아간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음의 욕심을 따라 마음으로 죄를 짓고 나서도 그 죄를 겸손히 고백하며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그 죄는 여러분 안에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해서는 안 되는 죄를 실제로 짓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돌이키지 않을 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간과 함께 돌에 맞아 죽은 아간의 자녀들은 여러분과 같은 어린 아이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에 교만과 탐심을 발견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겸손히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 마음을 깨끗게 하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마음의 악도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우리 마음의 교만과 탐심이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으면 괜찮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죄로 인해 우리를 치신다고 하여도 우리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낮아지셨고 아간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간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받았으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을 인해 심판을 받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얻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죽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마음의 죄를 겸손히 인정하고 용서해주시고 거룩하게 변화시켜주시는 은혜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들을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롬 8:32). 그러므로 모든 탐심을 버리고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바랍시다(약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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