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만 섬기도록 권면했어요
본문: 여호수아 23-24장
요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여호수아 24장은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의 설교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쳤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여호수아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권면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자신이 사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당부(어찌어찌할 것을 말로써 단단히 부탁하는 것)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은 무엇입니까?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그분을 섬길 것을 당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존경하고 두려워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존경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또 여호아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기라고 합니다. ‘성실과 진정으로’라는 말은 거짓되게, 입으로 만이 아니라 마음과 입으로 똑같이 여호와를 섬기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가 당부한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는 여호수아의 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놓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눈 앞에는 하나님 외에 많은 다른 신 곧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신입니까? 첫째는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입니다(2절).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섬기던 바벨론의 신들입니다. 둘째는 “애굽에서 섬기던 신”입니다(14절). 애굽에는 바벨론의 신들과는 다른 또 다른 온갖 종류의 신들이 있었습니다. 애굽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우상숭배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셋째는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입니다(15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아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거민들이 섬기던 우상들입니다. 이들 앞에 놓인 우상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일은 매우 매력적인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웅장한 신전과 신상이 있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맛있는 음식과 술, 즐거운 음악과 춤, 축제, 화려한 옷 등,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과 귀를 끄는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의 눈과 귀를 끄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호수아는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단단히 부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 많은 것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만을 섬겨야 합니까?
여호수아는 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그분을 섬겨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2-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유: “내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2-13절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자신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설명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2-13절에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또는 “나는”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그 일이 하나님 자신이 홀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내가”라는 말을 통해 여러 차례 반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속적인 도시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에게 복과 자손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3-4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인도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던 ‘우상숭배자’였습니다. 아브라함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불러내어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려고 “내가”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와 아론을 보내시고 그 땅을 재앙을 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오는 바로의 군대를 바다로 덮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6-7절).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여 요단 동편에 있었던 아모리 사람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고, “내가” 그 땅의 거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붙이시고 그들을 멸절시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8절).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을 다스리던 두 나라의 왕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싸우러 나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을 치게 하셔서 전멸시키셨습니다. 또 당시 모압 왕 발락이 거짓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만드시고 그들에게서 건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9-10절).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하나님은 “내가” 왕벌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 보내셔서 그들의 원수들을 쫓아내시고 “내가” 가나안의 땅과 성읍과 포도원과 감람원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이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홀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칼이나 활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땅은 그들이 “수고하지 아니한 땅”이고 그들이 거하는 성읍은 그들이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입니다. 그들이 먹고 즐기는 과실도 그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이었습니다(13절). 이처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들을 이야기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논리를 따라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길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 전에 택하셨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의 구원자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고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부패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홀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중립은 없다
이처럼 복음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려 할 때에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이것을 단호하게 선택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섬기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은 일이고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난 이것도 좋은데’라는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동일선상에 세상의 여러 좋은 것들을 올려놓고 그것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15절에서 여호수아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당부한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다른 신들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명합니다. 여호수아는 네 가지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첫째는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입니다(2절). 둘째는 “애굽에서 섬기던 신”입니다(14절). 셋째는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입니다(15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아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거민들이 섬기던 우상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며 약속대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기의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 중 이스라엘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그리고 우리도 이 네 가지 선택지 가운데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호수아는 정답을 말하는 대신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이런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입니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호히 결단하기를 바랐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얼마나 변덕스럽고 신실하지 못한지를 보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쉽게 기울 것을 잘 알았습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마지막 설교를 하는 그 시점에도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거민들의 우상숭배에 노출되어 있었고 어쩌면 그들 중에는 가나안 거민들의 미혹을 받아 우상숭배에 빠진 이들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23절 참조).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이방 신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그렇게 머뭇거리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단호히 선택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도전합니다. ‘설령 온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할지라도 나와 내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왔고 섬길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드러내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심을 깨우고 그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다른 신 사이에서 “두 마음”을 품지 말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하며 섬길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눅 16:13).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세상의 우상들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면서, 둘 다를 섬기는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태도는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께 합당한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섬겨야 할 분이십니다.
비용을 따져보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데 있어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비용을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하나님만을 섬기는데 드는 비용을 달아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약속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셨으므로 그들도 여호수아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만약 저라면 이렇게 대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래. 잘 대답했다. 너희가 한 말을 잘 지켜야 한다’하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또 다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합니다. 19-20절을 읽어봅시다.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라는 백성들의 말을 들은 여호수아의 첫 반응은 “당신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입니다. 여호수아의 대답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다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호수아가 이 말을 했을 때, 그곳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한 의지를 꺾어버리는 듯한 말을 한 것입니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너무나 성급하다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고 하였던 여호수아의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지키기에 자신들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지 충분히 알고 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는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했을 때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라고 질문했고 여호수아는 이러한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당신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기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의 의미와 무게를 깊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원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다시, 거듭하여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그 모든 말씀을 율법 책에 기록하고 약속의 표로 큰 돌을 취해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 두고 약속의 증표를 삼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길 것입니까? 네. 하지만 우리도 그렇다고 대답하기 전에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기겠습니다’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까?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깊이 계산해보지 않고, ‘나는 예수님 믿어. 그리스도인이야’라고 쉽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막 8:34, 눅 14:27).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행 14:22). 이 말씀대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육체와의 싸움이 남아 있고 세상의 여러 미혹을 뿌리치고 위협을 이겨내야 합니다.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계산해 보아야 한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예산하지 않고 건물을 세우는 사람과 같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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