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하는 즐거움"(마이클 리브스, 이레서원)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주된 실천이다.
1. 기도의 문제
안타깝게도 우리 중 대다수가 기도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지금 내가 한 사람의 실패자로서 다른 실패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는 점이다. 기도하지 않는 우리의 현재 상태를 우려하면서, 나는 이 책이 우리의 기도 생활에 회복제가 되기를 바란다.
2. 기도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기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의 실제 원인은 바로 기도를 오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는 기도를 하나의 추상적인 행위로 생각하고 말하기 쉽다. 곧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의무”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라고 불리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를 혼자 힘으로 해야만 하는 의무로 여긴다면, 더 나은 기도 생활을 하는 비결은 늘 실제적인 기술과 정보에 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의 핵심은 이런 일들에 있지 않다. 만일 여러분이 이해하는 ‘기도’가 이런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기도는 부담스러운 의무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실행하면서도’ 완전히 그릇된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다. 이 모든 실제적인 측면의 배후에는 하나의 핵심적인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인가? 그 정의를 장 칼뱅보다 더 잘 제시한 사람은 없다.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기도의 정의를 이렇게 제시한 바 있다. “기도는 ‘신앙의 주된 실천’(the chief excercise of faith)이다.” 달리 말해, 기도는 참된 신앙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주요한 통로라는 것이다. 이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실질적인 무신론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여된 상태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3. 도와주세요!
기도가 “신앙의 주된 실천”이라는 정의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오, 주님. 저는 얼마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인지요!’였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기도 생활은 기분 나쁠 정도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 곧 우리의 기도 생활은 우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기도의 진리를 확증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한 지식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 생활은 과연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하고 있는지,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로 의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물론 우리의 기도 생활에 따라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여부가 판가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도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이 영적으로 어린아이인지, 위선자인지, 주님을 실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기도가 “신앙의 주된 실천”이라면, 우리가 기도에 서투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본성상 우리에게는 신앙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한 사람의 죄인, 본성적으로 신앙과 기도를 회피하는 성향을 지닌 죄인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런데 죄인들의 친구이신 분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님이 바로 죄인인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4.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자네는 나를 몹시 추켜세우는군. … 자네의 높은 기대를 생각하면서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네. 불행하게도 지금 나는 이곳에 멍청히 앉아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기도도 거의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한숨짓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지. … 간단히 말해 나는 영의 일들에 열심을 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육신의 일이나 정욕과 게으름, 안락한 생활과 잠에 빠져 있다네. … 어떤 글도 쓰지 못한 채, 기도도 하지 않고 연구도 하지도 않은 채, 벌써 팔 일이 지나갔네. 이는 부분적으로는 내 육신을 유혹하는 일들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다른 부담에 짓눌리고 있기 때문이지. 루터가 친구 멜란히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5. 하나님의 말씀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기도가 신앙의 주된 실천이다”라는 말이 옳다면, 죄인인 우리가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일까? 여기서 기억할 것은 기도가 우리의 신앙에 연관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앙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신앙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이처럼 신앙과 기도는 복음에 의해 생겨난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가 종종 하나로 결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신앙과 기도를 일깨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메시지이다.
정리. 여기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1) 기도는 신앙의 주된 실천이다. (2) 우리가 본성적으로 기도에 서툰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3)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참된 생명을 누리도록 인도해줄 해답은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다.
6. 예수님처럼 기도하기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비결에 도달한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기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또한 기도하시는 분이다. 실상 예수님은 늘 기도하고 계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그분이 이 땅에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 기도를 통해 자신의 영원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계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성자이신 그분은 늘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의존하고 계신다. 그것이 곧 그분의 영원한 정체성이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흘러나온다. 성자이신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의 교제를 영원히 누리고 계시며, 그 가운데서 늘 기도하고 계셨다.
기도는 곧 예수님이 지금까지 늘 누려 오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리도 함께 누리는 법을 알아가는 일이다.
7.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기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눅 11:1-2). 예수님이 기도하는 이들에게 먼저 일깨워 주시는 것은 이 ‘아버지’라는 이름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영역에서 기본이 되는 첫 번째 교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늘 기억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신다. 곧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저 주님과 심판자로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 역시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 양팔 벌려 우리를 맞으시는 아버지 같은 모습,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하게 된다.
제임스 패커의 글이다. “어떤 이가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원한다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생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한번 살펴보라. 만일 그의 예배와 기도, 그의 인생관 전체를 주관하고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이 아니라면, 그는 기독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패커의 말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되 진심을 담아 그렇게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이때 우리는 성자 하나님, 곧 영원 전부터 “성부의 품 안에”(요 1:18) 계셨던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도 성부의 품 안에서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음을 헤아리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자께서 늘 누려 오셨던 그 넘치는 사랑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이 이처럼 사랑받는 자녀임을 알 때,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 내기 위한 행위로 여기지 않게 된다. 그 대신에 기도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이미 받은 은혜를 점점 더 깊이 헤아리게 된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이 냉랭하고 사랑이 식었으며, 우리의 기도 역시 보잘것없는 상태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그분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신다.
장 칼뱅은 우리가 이를테면 “예수님의 입을 통해” 기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성부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성자의 기도를 늘 듣고자 하시며, 우리는 그 성자의 이름으로 그분께 기도한다. 성자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허락해 주시며,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과 함께 기도하게 된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이끌림을 받았으며, 바로 기도로써 그 교제를 누린다. 다시 말하지만, 기도는 믿음의 실천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그분의 놀라운 약속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이미 누리고 계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교제 속에 참여한다.
8. 모든 상황 속에서 기도하기
기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라면, 그 교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매일의 일과 속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는 자신의 기도 생활을 삶의 나머지 부분들과 동떨어진 일로 여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성부와의 교제 가운데서 비롯되었고, 우리의 경우에도 그러해야만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매일의 삶이 모두 하나님께 속했으며 우리가 늘 그분과의 친교 속에 있음을 알 때, 기도는 더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속으로 스며든다.
기도를 하나의 추상적인 활동, 곧 ‘행해야 할 의무’로 여기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을 때, 우리는 한 가지 행위로서의 기도에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이 경우, 기도는 지루한 일이 된다. 그 대신에 기도의 대상이신 그분께 초점을 맞추어 보라. 내가 지금 누구 앞에 나아가고 있는지를 되새긴다면, 주의를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변화된다.
9. 하나님께 의존하기
기도는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진정으로 기뻐하며 누리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인 성자를 영원히 낳으심을 의미한다. 성부께서는 늘 성자께 생명을 주시며, 그분의 사랑을 풍성히 부어 주신다. 성부 하나님은 모든 생명과 사랑과 복의 근원이 되신다. 그렇다면 성자 하나님의 아들 됨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께 영원히 받아 누리신다는 것이 그 특별한 점이다.
이제 우리가 이러한 교제 속으로 이끌림을 받았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성부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분께 간구하고 의존하는 일은,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에 속하는 변함없는 일부분이 될 것이다. 성자가 성부에게 늘 의존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따라야 할 기독교적인 경건의 본질 역시 그런 의존성에 놓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고 또 구하며 그분께 의존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해짐에 따라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여유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궁핍함을 더욱 절실히 자각해야만 한다.
기도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시는 손길을 누리는 일이다. 이때 우리는 모든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짊어진 듯한 부담감과 고독하고 두려운 삶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된다. 기도의 자세는 자기 의존의 태도와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독립적인 성향과 개인적인 야심을 내려놓는다. 기도는 신앙의 실천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필요하며,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궁핍한 존재임을 시인한다.
10.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성자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이 은혜를 누린다. 그런데 이 일에서 성령님의 역할은 무엇일까? 성자께서는 모든 일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의 돛에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성부를 향한 성자의 사랑 가운데 참여하게 된다. 그리하여 성령님은 우리 역시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하시며, 성자께서 성부를 사랑하시듯이 우리 또한 성부를 사랑하게 하신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4-16).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다는 성경의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주신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언급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과 그럼에도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잘 아신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려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자신이 기도의 거장인양 가장하거나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일을 결단할 필요가 없다.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므로,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다.
11.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또 다른 사역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만드시는 일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면서 기도하도록 도우시며, 우리를 성부와 성자 하나님 사이의 교제 안으로 이끌어 가신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그분의 목적에 참여하도록 인도하신다. 이때 우리의 갈망이 하나님의 갈망을 닮아가기 시작하며, 그분이 품으신 열심은 우리의 것이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백성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상을 위한 중보자와 제사장이 되며, 늘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간다.
12. 성령님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우리를 하나로 모으신다.
성령님은 교제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가 서로를 향해 품고 계신 사랑을 북돋우고, 성부께 속한 가족을 불러 모으신다. 하늘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교제가 이루어지듯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우리 하나님의 본성 때문에, 성령님은 단순히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로 인도해 가는 데 그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부께 속한 ‘가족’으로서 그분 앞에 ‘함께’ 나아가도록 이끌어 가신다. 우리는 모든 이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 선 형제자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한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기도는 기독교적인 삶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보여 준다. 즉 성부 하나님께 속한 가족들은 그분 앞에 함께 나아와서 그분의 관심사를 공유한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도의 연합을 놀라운 방식으로 북돋우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어떤 이를 ‘위해’ 기도하거나 어떤 이와 ‘함께’ 기도하는 경우에 모두 적용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을 조롱하는 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자. 이같이 기도하는 동안, 당신은 마음속에 그를 향한 분노와 원한, 의심과 증오를 계속 품고 있기가 어려워지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와 함께 기도하는 일 역시 놀라운 체험이 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놀라운, 마치 가족과도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에 동참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할 때 하나의 가족을 이루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연합이 더 강해진다.
13.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기
기도는 신앙의 주된 실천이다. 곧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기꺼이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믿음, 성자 안에서 나를 받아 주신 그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주기 원하신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진리를 헤아리게 된다.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형제애로 충만하신 분이다. 일찍이 예수님 자신이 시험을 겪으셨으므로, 예수님은 시험에 처한 우리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풀며 돕고자 하신다.
성자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녀로서 그분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또한 그분들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데, 이는 우리가 자녀 됨의 유익을 누리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 유익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생명, 바깥으로 넘쳐흐르는 그 생명을 향유하는 것이다.
14. 기도로써 믿음을 실천하라!
기도가 신앙의 주된 실천이라면, 나는 왜 기도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솔직히 답해 보자. 그 이유들은 실제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느끼는가? 이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의존하는 태도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인가? 이 이유 역시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며, 이때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깨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혹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세상이 진정으로 주님께 속했음을 믿기 어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기도하지 않는 모습은 종종 이런 마음 상태를 드러내 보인다. 이 일을 숙고하는 동안 다음 시편을 통해 격려를 얻기 바란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도다.
시편 145:14-18
이제 위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기도로써 우리의 믿음을 실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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