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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210207 기드온의 승리, 그 이후

사사기 8장 22-28절

에브라임 사람들의 허영심, 그리고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이기심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13만 5천명의 대군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의 승리를 시기하며 원망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승기를 잡고 미디안의 남은 군대를 소탕하게 되자 에브라임 지파는 뒤늦게 참전하여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서 처형시키고는 기드온에게 왜 자신들을 처음부터 전쟁에 부르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쏟아냈습니다(1절). 에브라임 사람들은 정작 큰 희생이 필요할 때에는 옆에서 관망만 하다가,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큰 승리를 거두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영광을 얻게 되자 왜 혼자서만 이 좋은 일을 다 했느냐는 식으로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별로 큰 희생도 하지 않고 공을 세운 것도 없으면서, 큰 일이 이루어지면 은근히 자신이 큰 역할이라도 한 것처럼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는 다 허영심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기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비난과 공격에도 유순한 말로 잘 대답하여 그들의 노를 가라앉혀 주었습니다(잠 15:1). 기드온은 그들이 전쟁에서 충분히 공을 세웠으며, 자신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붙여주셨으니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큰일을 했다고 말해줌으로써 그들의 노를 풀어주었습니다(1-3절).

기드온의 군대는 아직 잡히지 않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계속 추격하다가, 요단 강을 건너 요단 동편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피곤하나 따랐”습니다(4절). 그들은 비록 몸은 힘들고 피곤하였고, 여전히 위험했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전쟁을 마무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싸우고 있었습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이런 모습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던 중에 요단 동편 갓 지파에게 속한 땅인 숙곳에 이르게 되었을 때,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에게 양식을 부탁했습니다(5절). 그러나 숙곳의 방백들은 “지금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세바와 살문나에게는 아직도 1만 5천명의 군대가 남아 있는데, 기드온에게 양식을 주었다가 나중에 그 화가 우리에게 미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며 거절했습니다(6절). 브누엘 사람들도 기드온에게 똑같이 대답하면서 양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드온 편을 들었다가 혹시라도 화를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만 생각할 줄 알았지, 하나님의 대의나 교회의 유익 같은 것은 헤아릴 줄을 몰랐습니다. 이러한 이기성은 불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이었으며 비협조적이었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그들에게 분노하였고, 그가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여 사로잡고 돌아오는 길에 숙곳의 방백들을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하고, 또한 브누엘에서는 그 망대를 헐고 그 성읍 사람들 일부를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13-17절). 또한 기드온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에 대해서도 그들의 죄를 묻고 그들을 칼로 쳐서 심판하였습니다(18-21절).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거절함

이렇게 해서 기드온은 파란만장했던 미디안 군대와의 전쟁을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나아와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22절). 기드온의 가문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기드온은 겸손했습니다.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조금의 권력이라도 잡게 되면, 왕 노릇을 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높아지고 싶어 하고, 다스리고 싶어 하며,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잘 사라지지 않고 불쑥불쑥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람들 앞에서 왕 노릇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런 성향을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기드온과 같이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라”(23절). 기드온은 이 시험을 잘 견뎠습니다.

기드온이 만든 에봇이 그의 집과 온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다

하지만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디안 군대에게서 탈취한 금귀고리를 달라는 뜻밖의 요청을 한 것입니다(24절). 미디안 사람들은 금귀거리를 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기에, 백성들은 미디안 연합군에게서 금귀고리를 탈취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무리들이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어 놓았는데, 그 금의 무게가 일천칠백 세겔이나 되었습니다(25절). 그리고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에봇은 본래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특별히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입는 옷이었습니다. 에봇은 본래 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지만,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기드온은 왜 황금 에봇을 만들었을까요? 기드온은 그 황금 에봇을 사적으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는 일에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제사장의 에봇보다 기드온의 황금 에봇이 훨씬 더 효험이 좋은 에봇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성막이 있는 실로로 내려가는 대신, 너도나도 황금 에봇이 있는 오브라로 왔을 것입니다. 마치 용한 점쟁이에게 가서 많은 돈을 주고 점을 치듯이 그렇게 황금 에봇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온 이스라엘이 그 에봇을 음란하게(미신적으로) 위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 에봇은 기드온과 그의 온 집에 올무가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은 자연히 미신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황금 에봇으로 큰 부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은 많은 아내를 두고 그들에게서 얻은 아들만 70명이 되었고 첩에게서 난 아들도 있었는데(30-31절), 많은 아내와 첩을 두는 것은 당시 부자나 세력 있는 왕들의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드온의 자손들은 신앙적으로 굳게 세워지지 못했으며, 그들의 결말도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바알을 섬겼으며, 기드온의 집을 후대하지도 않았습니다(32-35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이전에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피곤하고 위험해도 하나님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여 일했을 때에는 자타에게 복과 유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기드온은 자기를 위하여 일하기 시작하여 황금 에봇을 만들었을 때, 그것은 그의 집과 온 이스라엘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전쟁사에 길이 남을 놀라운 승리를 거둔 뒤에 잘못된 유산을 함께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의 순종 뒤에 마음이 느슨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승리로 만족하지 맙시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대군과는 용감하게 믿음으로 싸웠지만, 내적으로 일어나는 대적에게는 지고 말았습니다. 내적 싸움에서 패전한 결과는 외적 싸움에서 패전한 결과만큼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고전 10:12). 또한 모든 허영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피곤하나 따르는” 자들이 됩시다. 사람들의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황금 에봇을 만들려고 하지도 맙시다. 자녀들에게 올무가 될 만한 것을 남겨두지 말고, 하나님만 계속 바라보게 하는 좋은 신앙 유산만을 남겨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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