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주 동안 "깨어 있음"(브라이언 헤지스, 개혁된실천사)이란 책을 중심으로 '깨어 있음'에 관하여 공부하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깨어 있음이란 무엇인지, 깨어 있음의 본질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깨어 있음의 본질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여정, 경주, 싸움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우리는 순례자로서, 멸망의 성으로부터 천성을 향하여 이르는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갑니다. 이 여정은 온갖 위험과 시련, 유혹의 덫이 도사리고 있는 낯선 땅을 지나는 나그네 길과 같습니다. 한편 우리는 경주자로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마치기 위해 모든 방해 요인을 극복하면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달려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군인으로서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우리의 대장이요 왕이신 예수님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여 우리를 대적하는 죄와 세상,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이렇게 순례자요, 경주자요, 군인인 신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바로 ‘깨어 있음’입니다.
청교도들은 깨어 있음의 습관을 묵상과 기도처럼 잘 알려진 영적 훈련과 나란히 강조하면서도, 특별히 깨어 있음은 다른 습관들을 예리하게 유지해주는 습관으로 보았습니다. 즉 깨어 있음을 게을리할 때 다른 영적 습관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워집니다. 청교도들은 깨어 있음에 관해 가르칠 때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는 말씀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존 플라벨은 이 구절을 주제로 쓴 책의 서론에서 “회심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마음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이고, 회심 이후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깨어 있음은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깨어 경계하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다양한 용어들이 나옵니다. 이 용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깨어 있음의 네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말 그대로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경성’(警醒)이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시 127:1; 히 13:17). 운전자에게 졸음은 선택 사항이 아닌 것처럼, 신자의 삶에도 잠에서 깨어 있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물리적으로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깨어 있음은 정신적, 영적 의미일 때가 더 많습니다. 즉 우리의 영혼이 늘 깨어 있어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깨어 있음은 일시적인 의무가 아니라 긴급하고 지속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시기를 분별하는 신자들에게 ‘잠에서 깰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롬 13:11). 어두운 밤과 같은 이 세상이 끝나가고 그리스도와 함께 밝아올 새 날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2) 깨어 있음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밤에 적의 후방을 노리기 위해 고공 침투 훈련을 받는 공수부대처럼 행동해야 하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처럼 행동합니다. 위험을 긴급하거나 실질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비상시 주의 사항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듣지 않고 금새 잊어버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교훈합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눅 8:18)라고 말씀하셨고, 히브리서 2:1은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우리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깨어 있음에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살피는 일이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눅 21: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함께 우리 자신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끝으로, 깨어 있음은 특히 그리스도께 주의를 기울이라고 요구합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려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히 12:2). 우리 자신만을 면밀하게 살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향해야 합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유혹에서 지켜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깨어 있음의 세 번째 요소는 ‘경계’입니다. 파수꾼은 깨어서 주의할 뿐만 아니라 적군이 침투하지 않는지 유심히 살피며 지킵니다. 신자가 파수꾼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까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대적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세상, 육신, 마귀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원수는 세상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말씀하고, 세상의 벗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약 4:4)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가치, 문화 체계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두 번째 원수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울이 종종 “육신”으로 언급하는 “내주하는 죄”입니다(롬 7:18-20; 갈 5:16-17,24). 우리 내면에서 솟구치는 육신의 욕망에 미혹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죄는 스파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은밀히 숨어서 우리를 배신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경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롬 6:12)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세 번째 원수, 가장 큰 원수는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계 12:9)와 그의 명령을 받는 악한 영들입니다(엡 6:12).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경고합니다.
(4) 깨어 있음의 마지막 요소는 ‘기대’입니다. 경계가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면 기대는 희망을 나타냅니다.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기대를 시편 130:5-8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시편 저자는 자신을 날이 새기를 고대하며 한밤중에 불침번을 서는 파수꾼에 비유합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시 130:5-8).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에 희망을 두었습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영혼의 태도입니다. 그런 영혼은 주제넘게 서두르거나 나태함에 빠져 죄를 짓거나 불신앙에 사로잡혀 절망하지 않습니다. 파수꾼이 아침이 올 것을 확신하며 자신의 위치를 굳게 지킨 채 어둡고 긴 밤을 지새우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신자는 희망에 찬 기대를 품고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깨어 있음을 종말론적인 기대와 연결지어, 재림하실 그리스도께 생각을 집중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곧 깨어 있음이란 항상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줄곧 바라보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그저 자신을 살피고 점검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 모든 것을 과거에 이루어진 그분의 승리와 미래에 있을 그분의 재림이라는 영광스러운 빛에 비추어 생각하는 태도를 지향합니다. 따라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희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신랑이신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대하는 즐거움으로 활기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깨어 있음은 네 가지 요소(경성, 주의, 경계, 기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영혼과 그리스도께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도덕적인 원수들(세상, 육신, 마귀)을 경계해야 하고, 주님(그분의 약속과 재림)을 기대해야 합니다.
점검과 적용을 위한 질문
1. 그리스도인의 삶은 여정이자 경주요, 싸움입니다. 여러분은 순례자이자 경주자요, 군인입니다. 이런 비유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비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깨어 있음에 관하여 청교도 존 오웬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이 정의를 꼼꼼하게 읽고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깨어 있음의 어떤 측면이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지 살펴보십시오.
“깨어 있음이란 … 낱낱이 조심하면서 부지런하게 하나님이 지정하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 우리의 마음과 행위, 그리고 사탄의 전략과 전술을 살펴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 기회에 얽혀들지 않는 것이다.”
3. 깨어 있음의 네 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4. 여러분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경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경계를 게을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깨어 있음의 어떤 측면이 가장 필요한지 깨닫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5.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얼마나 자주 생각합니까? 재림에 대한 희망으로 더욱 기쁘고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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