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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누가복음]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눅 18:9-14)

바리새인과 . 세리

이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에 올라갔습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엄격하고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했던 무리들입니다. 반대로 세리는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했던, 죄인의 그룹에 속한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던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매일 두 차례씩 예배/제사를 드렸는데, 속죄제였습니다. 매일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성소 밖의 제단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할 양을 잡아 제단에 피를 뿌리고, 그후 제사장은 성소 안으로 들어가 향을 피워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향을 피우기 위해 성소 안으로 사라지는 그때에 보통 성전에 올라온 예배자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눅 1:10).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성전에 올라와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모습을 비유를 통해 나란히 보여주셨어요. 그럼 먼저 바리새인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내용으로 예배하고 기도했는지 살펴봅시다. 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였어요. 성전 예배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갔을 텐데 이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서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더럽고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나서 그는 큰 소리로 기도했어요. 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당신께 감사하나이다’하고 기도했어요. 무엇을 감사하고 있나요? 사람들의 물건을 도둑질 하는 사람들,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 간음을 하는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고, 함께 성전에 올라와 기도하는 세리 “같지 않음”을 감사하고 있어요. ‘같지 않다’는 것은 그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저들은 악하고 부정한 죄인이고 자신은 의롭고 경건한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행실과 인격이 그들보다 더 의롭고 경건하다는 이 사실을 인해 만족하고 그것을 감사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 내가 이와 같이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교만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이 교만한 이유는 자신의 행위 위에 기초하고 있었어요. 12절.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이 이처럼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거기에서 큰 우월감을 느끼고 다른 이들을 멸시하는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잘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정말 그런 면이 있었어요. 이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한다고 하였어요. 구약의 율법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오직 한 번 대속죄일에 금식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이나 금식하였어요. 뿐만 아니라 율법은 자기 소출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되어있었지만, 이 바리새인은 자기의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여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한 것이죠. 자신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 그 이상을 해 왔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기에게 감동하셔야 하고, 나와 같이 하지 못하는 저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에요.


겸손한 세리의 기도

반면 세리는 바리새인과 많이 달랐어요. 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바리새인으로부터 멀리 서 있었어요. 이 말로 보아서 세리는 성전 안쪽까지 깊숙히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성전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번씩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가 있고, 제사장이 향을 피우는 성소가 있었어요. 그리고 남자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고, 그 밖에는 여인들만 들어가던 뜰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면 그 밖에는 이방인들도 출입할 수 있는 뜰이 있었어요. 세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곳, 바리새인이 들어갔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서 있었어요. 아마도 제일 바깥쪽에 있는 이방인들의 뜰에 서 있었을지도 몰라요. 왜 그가 성전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 세리는 자신이 도저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자격이 없는 자임을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나처럼 불의하고 부정한 죄인이 어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까지 나아갈 수 있겠나, 나는 먼 곳에서 그저 하나님의 발치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하고 생각했을 거에요. 이러한 세리의 겸손한 태도를 우리는 기도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도 잘 볼 수 있지요. 세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볼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대신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기도하였어요. 자신이 지은 죄를 슬퍼하고 그것을 인해 괴로워하며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에요.


중동에서는 보통 여자가 가슴을 치지 남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요. 가끔씩 특별히 더 가슴 아픈 장례에 참석한 여자들이 가슴을 칩니다. 성경을 보면 이와 다른 사례가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였어요. 그때 예수님을 좇았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에 가슴을 칩니다(눅 23:48). 이처럼 가슴을 치는 행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만큼 슬픈 일을 당하였을 때에 치는 것이라면 이 비유의 세리는 진정으로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러면서 세리는 기도했어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비롭게 여겨주실 것을 간청했어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자신의 죄를 덮어주실 것을 기도한 것이에요. 이 세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어요.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무가치함과 부패한 마음,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깊이 느끼고 그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구한 것이에요. 오직 하나님께만 죄 용서함이 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만을 의지해야 함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의 평가

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예배,기도를 어떻게 보셨을까요? 14절. “내가 저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하셨어요. “이 사람”은 누구고 “저 사람”은 누구죠?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상태에서 성전에서 내려갔다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세리가 진정으로 뉘우치는 것을 받아들이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셨어요.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같이 회개하며 겸손한 자세로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꺼이 맞아들이시고 그를 높여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우리는 의로워야 합니다. 여기서 의로워야 한다고 할 때에 그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비추어 완전히 의로워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완전한 의로움에 이를 수가 없어요. 인류 조상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우리 모두가 의를 상실했고, 우리는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 성향을 따라 늘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우리 안에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도 없고, 선을 행할 수도 없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의 어떤 행위를 의지하고, 우리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그것을 의지하고 뽐내며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할 뿐이에요.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세리와 같이 그런 우리 자신의 죄와 부패와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깊이 깨닫고 그런 우리의 상태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을 가지고, 그러면서도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 우리 구주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의지하여 겸손히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받아주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제사를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주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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