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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단편] 부자와 거지 나사로(눅 16:19-31)

오늘 말씀에는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부자” 그리고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처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특히 의식주에서 두 사람의 삶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언제나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 화려하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뽐내며 살았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제대로 된 옷 한 벌 걸치지 못하였습니다. 대신 그의 온 몸은 헌 데 투성이입니다. 온 몸이 헌 데로 뒤덮여 있었는데, 개가 와서 그 헌 데를 핥았습니다.

또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부자의 집 식탁에는 각 종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했을 것이고 먹고 남겨지는 음식들도 많았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먹을 것을 없어서 그렇게 부자의 집 식탁에서 버려지는 음식으로라도 배를 채우기 위해 부자의 집 앞에 누워있었습니다.

또한 부자는 큰 집에서 살았습니다. 얼마나 큰 지 부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사로는 거할 곳이 없었습니다. 부잣집 대문 앞을 거처로 삼았습니다. 이 대문은 부자와 나사로 사이를 나누는 상징이었습니다. 대문 안에는 좋은 옷과 음식이 있는 반면 대문 바깥에는 헐벗고 굶주린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한 가지 차이가 보입니다. 나사로는 장사되었다는 말이 없고, 부자가 장사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나사로는 길에서 죽음을 맞았을 것이고 그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부자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을 것입니다. 많은 가족과 친지들, 친구들,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자의 무덤에 장사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자와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 이 두 사람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두 사람의 운명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 두 사람의 처지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음을 맞았을 때,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나사로는 세상에서 고통스럽고 서러운 삶을 살면서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했지만, 이제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반면 부자는 죽음과 함께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음부에서 매우 큰 고통과 번민 가운데 지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옥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브라함과 부자의 대화에서 우리는 지옥에 대해 몇 가지 사실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즉, 지옥은 불이 있는 곳입니다. 혹시 불에 대어 본 적이 있는 친구 있나요? 불에 대여서 화상을 입으면 무척 아픕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그와 같은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세상에 있을 때 당했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또 지옥은 물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자기 혀를 시원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사막과 같이 물이 없어서 생명이 있을 수 없는 곳, 메마른 불임의 땅과 같은 곳이 지옥입니다.

또한 지옥은 어떤 자비와 용서도 받을 수 없는 곳입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의 손 끝에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26-27절)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낙원에서 지옥으로 또는 지옥에서 낙원으로 건너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오는 일은 아브라함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옥이 무서운 것은 한 번 지옥에 가게 된 사람은 결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받아야 할 벌을 다 받고 회개를 하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두 사람은 이렇게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나사로가 천국으로 가서 영원한 위로 가운데 살게 된 것은 이 땅에서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또 부자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된 것은 이 땅에서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지옥에서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부자의 말과 태도가 그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부자는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기 혀를 깨끗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 당하자 이번에는 다른 요구를 합니다. 나사로를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의 집에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자신의 다섯 형제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부탁을 한 것일까요? 땅에 있는 자기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들은 자신과 같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런 부탁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이런 부자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원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자의 부탁 이면에는 ‘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에게 이 사실을 말씀해주지 않으셨느냐?’하는 불만이 섞여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고 대답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란 성경을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왜 부자가 살아 있을 때 나에게 말씀해주지 않으셨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가 땅에 있을 때에 나는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 다 말했다. 하지만 네가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으니, 너는 불평할 것이 없다.’

사실 부자는 유대인으로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을 알아본 것이나 아브라함을 향해 “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통해 아브라함에 대해 들어왔고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을 읽고 들었으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땅에 있는 부자의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다는 말에 부자는 다시 대꾸합니다. “가로되 그렇지 아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절) 아브라함은 땅에는 성경이 있고 성경을 설교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했지만, 부자는 ‘그렇지 않습니다’하고 아브라함의 말을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죽었던 나사로가 부활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가서 말하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성경보다 특별한 기적에 더 큰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적들을 통해 말씀해주셨다면 자신도 진즉 회개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31절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이적을 보여준다면, 설교를 들었을 때보다 예수님을 더 잘 믿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이적이 세 차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사로와 같은 이름의 나사로를 살리신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종교지도자들은 나사로를 죽이려 했습니다(요 12:10 참조).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느냐 하는 것이 부자와 나사로의 영원한 운명을 갈랐던 것입니다. 부자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들었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아브라함의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자기 집 대문 앞에 헐벗고 굶주렸던 나사로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부자는 물이 없고 불로 고통 받는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 받으며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습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듣고, 매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믿고,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고자 해야 합니다. 또 듣고 배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자가 겪고 있던 지옥의 고통을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구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 선행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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