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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염려하지 말라

작성자 사진: 병철 안병철 안

누가복음 12장 22-34절


오늘 설교의 제목은 “염려하지 말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는 걱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산란하고 근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모든 종류의 염려를 금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32-34절을 보면 두 사람의 염려가 비교되는데, “주의 일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고, 또 “세상 일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일을 염려하는 사람은 몸과 영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중심에서 나오는 염려를 하고 있고, 반면 세상 일을 염려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기쁘게 할까 하는 데에서 나오는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염려는 어떤 염려일까요? 세상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과 입는 일로 대표되는 모든 세상 일로 인한 염려를 금하신 것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일을 인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무작정 염려하지 말라는 말만 하시지 않고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를 설복시키시려는 것입니다. 그냥 덮어놓고 무조건 믿어라라고 하셔도 되는데(또 실제로 우리는 덮어놓고 믿어야 하는 일들도 많이 있는데(예. 삼위일체)),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왜 세상 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4절을 읽어봅시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까마귀는 씨를 뿌리거나 추수를 하지도 않고 추수한 것들을 쌓아두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생명을 보존하며 정해진 수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까마귀의 생명을 돌보시고 보존해주십니다. 지극히 작은 새 한 마리라도 기르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할 때 그 새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우리를 기르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까마귀뿐만 아니라 사람과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이 다 선하신 하나님께 의존되어 살아갑니다. 사람은 생각하기를 자기가 열심히 땀을 흘려 수고하여 수고의 결실을 맺고 그것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기 생명을 보존하며 살아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까마귀가 잘 보여줍니다. 까마귀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다 선하신 하나님의 돌봄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 생명을 보존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어떤 결심으로 온 힘을 다해 노력하면 안 될 일이 없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하지 못하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25절 말씀처럼 키 한 자도 스스로 늘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마치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마냥 염려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일입니까?


둘째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공급하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기만 하시고 능력이 없는 분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하신 분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선함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27절을 읽어봅시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백합화와 모든 식물들을 새 잎사귀와 꽃으로 단장시켜 주십니다. 겨울에는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도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잎이 나고 꽃을 피웁니다. 그렇게 해서 백합화 같은 꽃 하나가 입은 것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 금과 은과 보화, 또 형형색색의 옷감으로 만든 화려한 옷보다도 하나님께서 백합화에게 입혀주신 옷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의 탁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끔 기계들을 보면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핸드폰이나 전기자동차와 같이 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만들어진 기계들을 보면 놀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기술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작은 풀과 꽃이 가진 영광이 훨씬 더 탁월합니다. 작은 풀과 꽃이 가진 생명과 치밀함은 사람의 기술로도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꽃 한 송이를 그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장담컨대, 천년 이천년이 지난다 해도 안 될 것입니다. 그만큼 꽃 한 송이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사람의 능력보다 훨씬 더 탁월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를 기르십니다. 28절을 읽어봅시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주시기를 기뻐하실 뿐 아니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도 더 탁월한 영광으로 우리를 입히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9절을 보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30절에서 말씀해주십니다. 30절을 읽어봅시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능력이 탁월하신 분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의지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세상 백성들은 자신의 손에 자기 목숨이 걸려 있고 생존의 문제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 앞에서 일희일비합니다. 혹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신에게 나아가 먹을 것과 마실 것, 생명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 시간도 바치고, 재물도 바쳐서, 결국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백성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0절 하반절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방인들이 구하는 그것들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하늘의 까마귀도 기르시는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둘째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도 더 탁월한 영광으로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셋째는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염려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부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세상 일로 염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뿐 아니라 악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염려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 일로 염려하지 말라, 세상일로 안달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과 같은 것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염려하지 말고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 삶의 목적이 단순히 먹고 마시면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가장 고상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31절을 읽어봅시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 인생의 목적, 우리가 구해야 하고 염려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일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고 말씀해 주실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장 큰 관심을 두는 것,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을 이 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힘을 다하고, 이 나라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하나님 나라의 현현인 교회의 교회됨을 지키고 회복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우리 목숨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 주십니까? 본래 우리 목숨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본분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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