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다(눅 7:36-50)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어요. 초대에 응하신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 상에 앉으셨을 때, 초대받지 않은 한 여인이 식사 자리에 들어왔어요. 그 여인은 그 동네에서 죄가 많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어요.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앉으신 것을 알고 항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그곳에 들어왔던 거예요.
당시 유대인들의 식탁은 대게 U자 형태로 되어 있어서 비스듬이 기대어 앉는 손님은 왼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식탁의 바깥으로 발을 뻗고 오른팔로 음식을 먹었어요. 이 여인은 예수님의 뒤편 곧 발 있는 곳에 선 것입니다. 거기서 여인은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어요. 또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가져온 향유를 그 발에 부어드렸어요.
이처럼 동네에서 죄인으로 잘 알려진 여자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식사 자리에 들어온 것을 본 바리새인 시몬은 놀랐어요. 그리고 속으로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죄인인 줄 알아야 했다고 속으로 불평하며, 식사 자리가 망가뜨려진 책임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알았을 터인데! 그 여자는 죄인인데!”(39절, 새번역)
예수님은 시몬의 생각을 아셨어요. 그리고 한 가지 비유로 그의 문제를 지적해 주셨어요.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한 사람에게는 오백 데나리온을, 다른 한 사람에게는 오십 데나리온을 빌려주었는데, 갚을 길이 없는 두 사람의 빚을 모두 탐감해 주었다면 두 사람 중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는지 물으셨어요.
데나리온은 예수님 당시 화폐 단위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에요. 그러니 두 사람은 각각 2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과 두 달 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탕감 받은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빚을 탕감해 준 사람을 더 사랑할까요? 물론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할 거예요. 바리새인 시몬도 “더 많이 빚을 없애준 사람”이라고 대답했어요.
바리새인 시몬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라고 말씀하셨어요. 여자를 보라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은 여자가 예수님께 한 일과 시몬이 예수님께 한 일을 비교하셨어요.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다.”(44절, 새번역)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45절, 새번역)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46절, 새번역)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무례하게 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께 보여준 모습과 시몬의 모습은 많이 달랐어요.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소중한 향유를 부어드렸어요.
예수님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발을 닦는 일은 매우 천한 일로 여겨졌어요. 발을 닦는 일을 어찌나 천하게 여겼는지 발을 씻는 일은 집안에 있던 종들 중에서도 가장 천하게 여겼던 이방인 종들에게 맡기곤 했어요. 즉 여인이 보여준 행동은 자기 자신을 한 없이 낮춘 행동이었고 동시에 예수님을 지극히 존귀하게 여기는 행동이었어요. 그렇다면 죄인인 여인은 왜 이와 같이 예수님을 섬겼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여자가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한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47a) 예수님은 그 여자가 예수님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여자가 그토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예수님을 사랑한 것은 여자가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다가 탕감 받은 사람이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가 탕감 받은 사람보다 탕감 해준 사람을 더 크게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자도 많은 죄를 용서 받았으므로 예수님을 향한 더 큰 사랑을 보여주었던 거예요. 반면 시몬과 같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적게 사랑했어요.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시몬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죄사함이 필요 없었어요. 죄사함이 필요없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을 수 없고, 죄사함을 받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나요?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나요? 아니면 적게 사랑하나요? 오늘 말씀의 여인을 통해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알고, 그 큰 죄를 주님께 용서받았음을 아는 사람이에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많이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큰 지 알고 그 큰 죄를 용서받았음을 경험한 사람일거예요. 반면 우리의 사랑이 작고 미지근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 지 모르는 것이고 죄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거예요.
우리의 죄는 큰가요? 작은가요? 우리가 용서 받은 죄는 많은가요? 적은가요?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아주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진 죄의 빚을 값아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진 죄의 빚을 갚아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의 피를 다 쏟으셨어요. 우리가 진 죄의 빚을 갚아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은 목숨을 내어놓으셔야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죄가 큰가요? 작은가요?
그렇다면 많은 죄를 용서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지금보다도 예수님을 훨씬 더 많이 사랑해야 해요. 죄 많은 여자가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던 것처럼, 죄 많은 우리도 더욱 겸손히 예수님을 사랑해야 해요. 많은 죄를 용서 받은 여자가 자신에게 있던 가장 값진 향유 옥합을 예수님의 발에 쏟아드렸던 것처럼, 많은 죄를 용서 받은 우리도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예수님을 섬겨야 해요.
물론 지금 주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았요.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발을 씻겨 드릴 수도,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릴 수도 없어요. 하지만 하늘에 계신 주님은 설교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세요. 그러므로 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주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습니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여기고 있나요?
또한 주님께서는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시지만, 주님의 몸인 교회는 이 땅에 있지요? 그러므로 교회와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셨지요?(마 25:40)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친구들을 사랑해야 하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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