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다시 하나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류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으로 나뉘게 됩니다. 가인의 후손은 하나님을 떠나 문명을 발전시키며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의 후손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창세기 6장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을 가리키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을 가리킵니다.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세속적이고 화려한 문명과 문화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뺴앗깁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처럼 셋의 후손들에게 세상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는 표현은 라멕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두 아내와 결혼한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요? 두 후손들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결혼하여 한 몸이 된 결과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요. 첫번째는 하나님의 신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이상 함께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수명은 120세로 낮아졌습니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강성하고 번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네피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나온 자녀로 네피림을 말하는데, 성경은 그들을 용사요,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죄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이러한 죄로 관영한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육체의 아름다움과 힘과 능력만을 보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이제 세상은 말그대로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들을 보며 한탄하셨고, 결국 사람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하십니다. 하지만 소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빛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 노아
우리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경건한 아벨이 죽어 여자의 후손이 허무하게 끊어지는 듯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주셨습니다. 이제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과 같이 되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은혜로 보존해 주십니다. 노아는 의인이었고, 그 시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노아에게 죄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대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노아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에녹과 같이 하나님께서 데려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 끝까지 남겨두셨지요.
11-12절에는 ‘패괴하다’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온 땅이 부패하였습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문명은 더욱 발전하였고,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마치 죽은 시체들로 쌓인 산과 같이 부패가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부패와 함께 그 시대를 특징짓는 단어는 ‘강포’입니다. 바로 ‘폭력’이지요.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업압하고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을 멸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부르셔서 방주를 짓게 하십니다. 홍수를 땅에 일으켜 모든 생명이 있는 육체를 멸하실 것이지만, 노아와는 언약을 세우셔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구워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온 세상을 뒤엎는 홍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땅 위에 이렇게 큰 방주를 짓는다니요.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2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던 그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살았습니다. 노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사람들의 평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말씀이 노아의 삶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은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방주를 짓는 긴 시간 동안 노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선포하였을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아의 삶 자체가, 그가 방주를 짓는 행위 자체가 분명한 선지자적 행동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는 노아에게 와서 물었을 것입니다. 무얼 만드냐고,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냐고 말이지요. 노아는 분명하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바로 당신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고, 부패와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분명한 소망과 기쁨과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소망의 이유를 물을 때 교회는 분명한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죄로 가득한 우리 인생을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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