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복과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이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주어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동일한 명령이 1절과 7절에서 반복되며 봉투와 같이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 이 단락의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명령 안에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육식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살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인류의 생육과 번성을 위한 것입니다. 육식을 허용하실 때 특별히 그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속죄할 수 있는 피의 가치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단락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살인하지 말라’는 것인데요.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이기도 합니다. 6절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 이유로 모든 살인은 금지됩니다. 이 명령은 또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 입니다. 살인은 이것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막아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에게 그의 생명을 하나님이 빼앗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복수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살인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내가 미워하는 사람, 원수와 대적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과 관계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복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우리의 심판과 복수는 정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보복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노아 언약과 그리스도의 구원
노아 언약의 다른 이름은 보존 언약입니다. 그 이유가 11절에 나오는데요.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셔서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언약은 다른 은혜언약들, 곧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언약과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언약들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면 노아 언약은 택자의 구원이 아니라 전인류, 모든 생물의 보존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노아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에 보편적으로 베푸시는 일반은총의 기초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아 언약이 택한 백성의 구원과 관련된 일, 즉 특별은총과 상관없는 언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노아 언약도 그 핵심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고 세상을 보존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택자들을 구원하시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다 이룰 때까지, 즉 택하신 자를 모두 구원하실 때까지 세상을 보존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인간이 악하더라도,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보존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부터 홍수 이후 노아의 가정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을 보여줍니다. 홍수 후 노아의 가정에 대한 유일한 기록으로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함이 한 일이 저주를 받을 만큼 큰 죄인가?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저주가 가혹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질문은 함이 저주를 받을 만큼 죄를 지었다면, 함이 저주를 받아야지 왜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가 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는 무엇인가요?
노아는 세상이 하나님께 심판 받은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죄 때문이지요. 온 세상이 죄로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택하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복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타락한 세상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모두 경험한 노아는 홍수 이후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 함에게서 세상을 멸망시킨 바로 그 죄를 본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 문화에서는 특히 벌거벗은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함이 벌거벗은 노아를 보았다는 말은 자세히 살펴보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주목하여 보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내어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켰습니다. 함의 죄가 어떤 죄인지, 얼마나 큰 죄인지 보다 본문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된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가 살아 남아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는 함의 죄를 보며 자신의 죄 역시 깨달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8-9장은 홍수 이후의 이야기를 창조 이야기와 연결짓습니다. 마치 노아를 두 번째 아담으로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노아 역시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아담으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것을 기대하였는데, 현실은 자기 자신과 자녀들에게 어떤 의로움이 없고, 오히려 죄가 강력히 역사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소망이 절망이 되었습니다. 노아의 저주는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내뱉은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과 미래에 대한 선지자적 저주였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저주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노아는 저주만 한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축복도 있습니다. 그 축복의 핵심이 26절에 나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주목할 것은 노아가 하나님을 “셈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 이전에 있었던 모든 역사를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던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노아는 함에게서 뱀의 후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셈에게서 여자의 후손을 보았습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송한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내가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구원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셈의 후손으로 오실 바로 그분이 우리를 이 끊을 수 없는 무서운 죄에서 구원하여 주실 구원자이심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던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와 같이 악하고 불의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시는 이유는 노아와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함받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보존해 주실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이 여전히 의미 있는 세상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함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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