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우리의 복은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은 육축과 은금을 풍부하게 소유하여 애굽에서 나옵니다. 이와같이 인생에는 기근의 때와 풍요의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근보다 풍요를 원하지요.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부요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에게는 기근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그저 많은 재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언제나 신실하게 나를 보호하시고,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간 것은 불신앙적인 행동이지만 그래도 결국 부자가 되었고 믿음도 잃지 않았으니, 우리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정말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것은 설령 부자가 못되더라도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복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방식
아브라함은 부자가 되었고, 함께 있는 롯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둘에게는 많은 가축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가축들에 비해 목초지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롯을 통제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지요.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소유와 힘을 늘리는 방법입니다. 명분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보다 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문화 속에서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결정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며, 두 사람이 나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주도권을 롯에게 주어 롯의 결정에 따라 자신도 움직이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가 더 이익을 볼 수 있지만 포기하고, 손해 볼 것까지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지요. 나에게 힘이 있다고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그 힘으로 나보다 약한 사람을 더 잘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굽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단지 부자된 것을 복으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고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배려로 롯이 먼저 갈 곳을 정했습니다. 롯의 눈은 애굽 땅과 같이 풍요로운 곳을 향하였습니다. 우리의 눈에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이 우리에게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10절을 보면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풍요로웠지만, 13절에 보면 그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롯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보다 세상의 부요함과 즐거움을 우선하는 선택을 합니다. 재물이나 부요함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추구할 때 급속도로 타락합니다. 그 때 재물은 가장 강력한 우상이 되어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려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14-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헤브론으로 갑니다. 헤브론은 산악지대로 목축이나 농경을 하기에 그렇게 좋은 땅은 아닙니다. 누가봐도 아브라함이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의 동서남북을 보라고 하시면서 보이는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이 땅에서 이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 땅에서 믿음으로 나그네와 같이 살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우리는 갈등과 다툼이 만연한 세상에서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는 어떻게 찾아옵니까? 내가 져주면 됩니다. 내가 손해보면 됩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가 이기려고 하고, 손해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사람이 기꺼이 져주고 손해를 보면서도 양보할 수 있습니까? 더 강한 사람이 져줄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손해를 보면서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부요한 사람이 성도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도 아직 이 약속의 성취를 다 보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그네와 같이 그렇게 살다가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길이요, 생명의 길이고, 영광의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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