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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121) : 창세기 21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이삭의 출생

1절에 ‘권고하다’라고 번역된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방문하다’입니다. 창세기 18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사라에게 ‘방문하셨고’ 말씀하신대로 사라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말씀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짓고(17:16), 말씀대로 태어난지 팔 일 만에 이삭에게 할례를 행합니다(17:12).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속으로 웃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여 웃은 것이지요. 이 일로 하나님과 사라 사이에 웃었다, 웃지 않았다 언쟁이 일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신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6-7절). 비록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행하셨습니다. 불신과 의심의 웃음을 확신과 기쁨의 웃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는 날 큰 잔치를 엽니다(8절).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가 낳은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 젖을 뗀 것은 잔치를 열만큼 기쁜 일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기쁜 잔치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던 것은 언제일까요? 바로 이삭이 태어나서 젖을 뗀 지금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기쁨은 단순히 노년에 얻은 아들로 인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기뻐하였고, 하나님의 언약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여 모든 민족의 복이 되실 메시아를 바라보며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과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모든 것을 완전하게 누리지는 못합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25년 동안 기다린 것처럼 우리도 소망 중에 그 날을 기다립니다. 때때로 우리도 연약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이 우리에게 복이 될거라 생각하여 실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때마다 말씀으로 교훈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소망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브라함과 사라가 기쁘게 웃은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가장 큰 기쁨의 웃음을 짓게 하실 것입니다.


쫓겨난 이스마엘

이삭이 젖을 떼었던 때가 3살 무렵이었다고 볼 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7세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장성한 이스마엘이 젖을 뗀 아이를 희롱합니다. ‘희롱하다’라는 말도 ‘웃음’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인데요. 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을 때 이스마엘은 이삭을 조롱하며 웃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라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은 결정을 못내리고 깊이 근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말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내용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몸에서 난 아들이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정에 끌려 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염려하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약간의 양식과 물을 주며 하갈고 이스마엘을 보냅니다. 하갈은 들에서 방황하다가 그만 물이 다 떨어지게 되었고, 엄마와 아들은 마주 보며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하갈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시며,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셔서 샘물을 보게 하셨고, 하갈은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돌보셔서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활쏘는 자로 자라게 되었고, 애굽 여인을 아내로 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과 같이 언약 밖에 있는 사람도 번성하게 하십니다. 하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 삼으신 우리를 더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번성과 번영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궁극적인 복은 그런 물질적인 번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 복으로 인해 만족하고 감사합시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이 사는 땅에 나그네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22절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말합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군요, 그러니 우리를 잘 대해 주십시오’라고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을 볼 때 아브라함이 그랄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불이익을 당하였지만 다투거나 싸우지 않았던 것이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보며, 아브라함에게는 우리와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요청을 받아들여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이 이방인도 깨달았습니다. 성도의 삶이 비록 연약해보여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세상은 성도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평화의 언약을 맺고, 그 곳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3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에셀나무는 생명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영생을 맛보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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