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인내
노년의 아브라함은 1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노년에 아브라함은 후처를 두었고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생전에 그들에게 재산을 주어 이삭에게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늘의 별들, 해변의 모래보다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땅 중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는 가족묘지 뿐이고, 약속의 자녀는 이삭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그래서 다른 자녀들을 이삭에게서 떠나 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래 참았던 것처럼, 이삭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이삭과 리브가는 혼인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21절은 ‘리브가에게 자녀가 없었는데 이삭이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잉태하게 하셨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26절을 보면 아이를 낳을 때 이삭의 나이가 60세였습니다. 40세에 혼인을 했으니 20년 만에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했다’는 간단한 언급 뒤에는 20년 동안 인내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기도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성도의 삶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다 소유하지 못하고 다 누리지도 못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
리브가는 쌍둥이를 잉태하였습니다. 22절을 보면 두 아이가 태속에서 서로 싸운다고 하였습니다. 싸운다고 번역된 말은 아주 강한 표현입니다. 사사기에서 아비멜렉이 망대 아래 있을 때 위에서 한 여자가 맷돌을 떨어뜨려 아비멜렉의 머리를 깨뜨렸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때 ‘깨뜨리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뱃속에서 큰 싸움이 나서 리브가도 내가 어찌할꼬 하면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나라가 네 태중에 있다고 하시면서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미래의 일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로마서 9장에서 사도바울이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리브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행동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뜻하신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뜻하신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와 성도가 약하게 보일 때에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하심 가운데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욥은 무고히 고난을 당했지만, 그 고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었습니다.
한 그릇 음식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던 에서
끝으로 25장 마지막에는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야곱은 리브가를 통해 장자의 명분이 본래 자신의 것임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획적이었는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야곱은 에서가 피곤하고 배고파하는 것을 이용하여 장자의 명분을 얻으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이 간사하고 인색해 보입니다. 하지만 34절을 보면 성경은 에서를 비난합니다. 그가 장자의 명분을 하찮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32절에서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에서의 신앙을 잘 보여줍니다. “먹고 살만해야 하나님도 믿는거지” 혹은 “하나님 믿는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이런 말입니다. 당장 배가 고파 죽겠는데 하나님의 언약과 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일단 내가 먼저 먹고 배불러야지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6은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에서가 한 일은 망령된 자가 하는 행동이고, 오늘날도 그렇게 망령된 사람이 있으니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두렵게 생각해야 할 교훈입니다.
정리하면,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장차 우리에게 주실 복된 약속을 소망하며 인내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의 필요를 오직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되 응답이 더디다고 지치거나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장래의 소망을 이 땅의 썩어버릴 것들보다 가볍게 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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