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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221) : 출애굽기 2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모세, 태어나고 구원받다


이제 유대인들은 바로의 잔인한 명령,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는 명령 아래 살아가야 했습니다. 한 레위 가족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세 달 동안 숨겼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이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마침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기 위해 나일 강으로 내려왔고, 그녀는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아기가 울고 있었습니다. 한 눈에 히브리 사람의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숨어서 살펴보던 아기의 누나가 바로의 딸에게 달려와서 “제가 공주님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 유모를 불러와 젖을 먹게 할까요?”라고 말합니다. 공주는 유모에게 삯을 주면서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게 합니다. 아이가 자라자 바로의 딸이 데려가 양자로 삼고, 그의 이름을 모세라 불렀는데, 그가 물에서 건져졌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태어나면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남자로 태어나면 죽임을 당해야 했던 시절에, 부모는 그를 살렸고, 바로의 딸은 그녀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돌보셔서 구원하신 이유는 모세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할 목자로 모세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에서도 모세와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악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애굽으로 피난하여 살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더 위대한 구원자, 진짜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모세,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 하다


모세는 장성한 후에 종종 자기 형제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봅니다. 참지 못하고 달려가 애굽 사람을 쳐서 죽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몰래 감추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나갔는데,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 두 명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중재를 하기 위해 나서자, 돌아온 말은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였습니다. 아마도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것도 애굽 사람에게 학대 당한 히브리 사람이 소문을 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바로의 궁에서 애굽의 왕자로 자란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자기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유모의 손에 길러졌던 어린 시절의 영향이었습니다. 유모는 사실 진짜 엄마였지요. 그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비록 모세가 바로의 딸로 자라더라도,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히브리인으로 자라도록 교육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 사람들은 모세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높은 신분을 가진 모세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모세는 평소 히브리인들과 격이 없이 지내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브리 사람들의 눈에 모세는 히브리인도 아니고 애굽인도 아닌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동포들은 고생하는데 바로의 궁에서 편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였겠지요.


히브리서 11장 24절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애굽의 보물과 안정된 삶을 거절했다는 말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데요. 공주는 모세에게 은인이었고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명확하게 악한 것만이 아닐아 좋은 것에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빅터 해밀턴).


모세, 절망하다


이 일이 알려지고 모세는 광야로 도망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양을 치는 목자가 됩니다. 미디안 여자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는데,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때 모세의 절망과 낙심이 얼마나 컸던지, 모세는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애써 잊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도, 이스라엘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이스라엘은 더 고된 노동으로 고통을 받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모세는 절망하고 포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저 고통에 부르짖었을 뿐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고,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절망과 고난의 시간도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 안에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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