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두 번째 제사 : 소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제사는 ‘소제’입니다. 소제란 곡식가루나 곡식가루로 요리한 음식을 제물로 하는 제사입니다. 모든 제사 중 유일하게 가축의 희생이 없는 제사, 즉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소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민하’인데, 선물 또는 공물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민하’는 특별히 공물의 성격이 강한데요.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예물을 먼저 보내는데, 이때 예물이 ‘민하’입니다. 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을 사기 위해 보낸 예물도 ‘민하’이고, 사사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갔다가 암살하였을 때, 공물도 ‘민하’입니다. 이런 용례를 볼 때 ‘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왕이신 하나님께 충성의 의미로 드리는 ‘공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말 ‘소제’는 ‘하얀 제사’라는 의미로 ‘소’는 흰색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제물로 드려지는 하얀 밀가루의 특징이 반영된 번역 같습니다.
소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제는 ‘고운가루’로 드려졌는데, 보통 껍질까지 함께 빻은 일반 곡식가루와 달리 알맹이만 따로 골라내서 곱게 빻은 고급 곡식가루를 의미합니다. 이 고운가루 위에 올리브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올렸습니다. 유향은 보스웰리아라는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송진과 같은 진액을 채취한 뒤 말려서 만드는데,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덩어리로 매우 귀하고 비쌌습니다. 소제는 요리한 음식으로도 드릴 수 있었는데요. 세 가지 요리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화덕에 굽거나, 번철(팬)에 부치거나, 솥(냄비)에 튀기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조리해서 드릴 때에는 유향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요리된 음식의 소제물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한 제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제사자가 준비한 소제의 제물을 가지고 성막으로 나오면 제사장은 그 중 한 움큼을 쥐고 제단 위에 올려 태웁니다. 음식의 경우도 전부가 아니라 일부를 떼어내서 제단에 올려 태웠습니다. 이렇게 제단에 올려진 제물을 ‘기념물’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습니다(2, 9, 16). 기념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단 위에 바쳐진 소제의 제물은 하나님께 기억해달라는 간청이 담긴 제물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와 느헤미야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르 구원해 주소서’라고 간구하곤 했습니다. 특별히 모세오경에서 기념하다(기억하다)라는 동사는 대부분 구원과 관련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소제의 제물을 기념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 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소제는 이렇게 언약을 통해 우리의 왕이 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하며 바치는 ‘공물’이고, 또한 이 공물을 보셔서 우리와 맺은 언약을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간구의 제사였습니다.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소제에 반드시 들어가야 했던 ‘소금’입니다. 13절을 보면 모든 소제의 제물에는 반드시 소금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소금을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소금언약’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요(민 18:19, 대하 13:5). 두 구절 모두에서 함께 나오는 표현이 ‘영원하다’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는 표현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제사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사랑(헤세드)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소제에서 반드시 넣어야 할 것이 소금이었다면, 절대 넣으면 안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바로 누룩과 꿀입니다. 소금이 영원하고 불변한 것을 의미한다면, 누룩과 꿀은 금새 변하고 부패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룩과 꿀이 들어간 음식은 쉽게 변질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충성을 다짐하는 소제에, 누룩과 꿀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제의 제물 중 일부를 떼어서 제물로 태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면 남은 소제물은 어떻게 했을까요? 3, 10절을 보면 제단 위에서 기념물로 태워진 소제물 외에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습니다. 소제의 제물은 하나님께 바쳐진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다른 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제사장과 레위인은 구별되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의 일부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리시는 방식으로 공급하시고 채워주셨습니다. 이 원리는 신약의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고린도전서 9:13-14에서 사도바울은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함께 나누는 것처럼,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복음 사역자는 다른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복음 사역에 전념하며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그의 생계를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번제를 ‘헌신의 제사’라고 말한다면, 소제는 ‘언약의 제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번제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 전부를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면, 소제는 그리스도께서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여 언약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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