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아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시내산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는 이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한 일로 소개되는 것은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되지만, 이 광야 여행이 오늘 우리의 삶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씁쓸하게도 납득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신속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악한 말로 원망하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매일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것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조차도 사막의 풍경처럼 지겹게 여겨 버리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악한 말로 원망한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와 불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반응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부터 시내산까지의 광야 여행에서도 이스라엘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물이 없다고 불평하면 물을 주시고,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면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노하시고 불로 징계하십니다. 원망하는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이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충분히 알고 경험했기 때문에, 그만큼 성숙한 반응을 요구하시는 것이지요. 갓난 아이가 젖을 달라고 울며 떼를 쓸 때 아이를 책망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서도 그런 식으로 계속 울며 떼를 쓰면 혼내서라도 버릇을 고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이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시고 징계하셔서라도 우리를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지만 긍휼을 베푸십니다. 불로 진 가운데를 사르지 않고 변두리를 사름으로 경고하셨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곧 불을 끄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다베라’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요. 그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므로 여호와의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4절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는데요. 이번에도 불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에 있던 다양한 족속의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나왔습니다. 이방인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했던 것이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들어온 모든 이방인들이 좋은 신앙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탐욕을 품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되어 고기를 달라고 울며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를 생각하며 거기서는 값없이 좋은 음식들을 먹었다고 말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불평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 고기를 주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담긴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과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셨는지를 잊고, 지금 당장의 부족함과 불편함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불신하며 원망한 것입니다. 한편 애굽에서 값없이 먹었다는 음식 목록들을 보면, 자신들이 애굽에서 대단히 잘 살았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학대 받는 노예로, 아들을 낳으면 강에 던져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살던 자들이 마치 하나님께 구원받기 이전의 삶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웠다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세상이 즐거워 보입니다. 불행하고 비참했던 과거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10-15절에 모세의 반응이 나오는데요. 모세도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짐이 너무 무겁다고 하며, 내가 어디서 고기를 구하냐고 합니다. 혼자서는 이 백성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깊은 침체에 빠졌는지, 이전에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더라도 이 백성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모세가 이번에는 내가 낳지도 않은 이 백성을 왜 나에게 떠맡기시냐고 원망하며 백성들과 자신을 분리합니다. 또 마치 지금까지는 자기가 고기를 준비한 것처럼 내가 어디서 고기를 구하냐 하지요. 모세도 지쳤고 불신 가운데 불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의 불평과 같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먼저 혼자 이 백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기도에 대해서는 70명의 장로를 세워 모세를 돕게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게 고기를 한 달 내내 먹게 하셔서 먹기 싫어질 때까지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으로 메추라기를 몰아 백성들이 먹을 수 있도록 공급하십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이 메추라기를 입에 물고 있는 그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노로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이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들이 탐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탐욕대로 주십니다. 그런데 이게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욕심으로 구하고 악한 것을 구할 때 그것을 넘치게 주시는 것은 그 자체가 재앙인 것이지요.
하나님과 상관 없이 욕심으로 구하여 얻은 것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결국 화가 됩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세상의 좋아보이는 것들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두 번은 좋지만 이내 실증나고 질립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부족하고 힘든 곳입니다. 원래 그런 곳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잠시 지나가는 길입니다. 따라서 조금 힘들고 부족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며 걸어야 하는 곳이지요. 그런데 마치 여기가 목적지이고,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도 없이 오늘을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게 됩니다.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아와’를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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