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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519) : 민수기 22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발람 이야기(1)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은 처음부터 원망과 불신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번번이 실패하는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방편을 주셔서, 소망 가운데 광야를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고라 무리의 반역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부정하게 되었을 때,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이용해 정결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하찮게 여기다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봄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방편들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살펴볼 발람의 이야기에서 이 메시아에 대한 계시는 더욱 선명하게 나타납니다(민 24:17-19 참고).


이스라엘은 강력한 두 왕을 물리치고 모암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 요단강 건너 여리고 성이 보이는 곳이었지요. 여기에 이스라엘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압 왕 발락입니다. 민수기 21장 26절을 보면, 모압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패하여 모든 영토를 빼앗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을 이겨서 그 영토를 차지하고, 변경으로 밀려난 모압을 향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발락과 모압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의 구체적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함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바로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보고 두려워했던 것처럼(출 1:7-9), 모압 왕 발락도 이스라엘의 수와 강함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5절을 보면 발락은 “한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온 땅을 덮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압 왕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하나님을 실패가 아닙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도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발락은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바로 브올의 아들 발람입니다. 발람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예언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축복하면 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지요. 그래서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복채를 들고 발람을 찾아갑니다. 이들의 말을 들은 발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겠다며 하루를 기다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찾아오셔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백성이니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발람은 그렇게 발락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발락은 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보내서 일종의 백지수표를 제시합니다. 이 백성에게 저주만 하면 원하는대로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발람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복 주신 백성에게 저주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발람이 거절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겠다고 합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다시 듣겠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발락이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기회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신약성경은 이런 발람을 가리켜 “불의의 삯을 사랑한 사람”(벧후 2:15),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간 사람”(유 1:11)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러한 발람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만 전하라 하십니다.


이어지는 발람과 나귀의 이야기는 발람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줍니다. 발람이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막아섭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발람이 그 길을 지나가려 하는데 나귀가 길에서 벗어납니다. 채찍질을 하고 지팡이로 때려도 가지를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십니다. 그리고 발람의 눈을 여시지요.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자신을 막아서서 죽이려 했음을 알게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이 말이 발람의 진심이었을까요? 그가 정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기를 원했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되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기뻐하시는 뜻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결국 발람은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모압으로 옵니다. 발락은 발람을 환대하지요.


발락과 발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발락은 돈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있다고 믿고, 발람은 돈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타협합니다. 이들은 나귀보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나귀도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을 보고 나아가지 않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때려도 죽는 길로 갈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돈에 사로잡힌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타협하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합니다. 멸망하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고집을 부리며 가고야 맙니다.


이런 발람이 매우 어리석게 보이지 않나요? 씁쓸하게도 발람의 이 어리석은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구하고 기도하지만, 정작 결정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지요. 많은 경우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따릅니다. 이익을 얻는 길, 손해보지 않는 길, 나의 욕심을 채워주는 길을 선택하지요.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그런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길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모른척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뜻을 부정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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