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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701) : 신명기 23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교회 :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공동체,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공동체


“여호와의 총회”는 언약 공동체에 속하여 예배를 위해 모이는 사람들의 총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언약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1-8절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하여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를 접하게 되고, 여러 민족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언약 백성들은 어떻게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을지가 본문의 관심입니다.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 중에 고자와 사생자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거세는 이방 종교의 제의적 의식에서 행해지곤 하였습니다. 사생자는 정상적 부부 관계 밖에서 태어난, 즉 금지된 관계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자와 사생자는 가나안 민족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우상숭배와 음행과 관련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암몬과 모압 사람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들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을 환대하지 않고 도리어 적대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저주를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사람들을 저주하는 자들, 곧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은 우상숭배자, 음행하는 자,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고 저주하는 자입니다.


한편 에돔과 애굽은 삼대 후 총회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로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이기 때문이라 하고, 애굽은 과거 이스라엘이 객으로 보냈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곳이었지만 그 이전에는 기근의 때 이스라엘을 환대하였고(요셉의 때),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암몬과 모압 족속과 대조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환대’하였던 사람들은 여호와의 총회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삼대란 기간은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동화되기 위해 필요한 기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총회 곧 교회는 예배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전투하는 공동체입니다. 9절은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9-14절의 내용을 보면 이때 악은 어떤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부정’을 의미합니다. 몽설(몽정)을 할 경우에는 진 밖에서 하루 격리와 목욕입니다. 대변은 진 밖에 변소를 만들고, 용변을 본 후에는 흙으로 덮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규례의 목적은 “진을 거룩하게 하는 것”(14절)입니다.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승리를 주시기 위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진 중에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을 거룩하게 하는 것들을 보면 하루 격리에 해당되고, 진 밖에서 해결하면 되는 작고 사소한 것들입니다. 즉 일상에서 지극히 작고 사소하게 생각되는 것들에서 거룩하고 정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당대의 법과 상식을 뛰어넘는 율법의 의미를 발견하며 놀라게 되는데요. 15-16절도 그렇습니다. 고대 근동은 물론이고 신약의 로마 시대에도 도망친 노예는 극형으로 처벌했고, 도망친 노예를 숨겨주거나 보호해준 사람도 중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종이 주인을 피해 도망하면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그가 기뻐하는 곳을 택하게 하여 함께 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율법이 있어도 노예 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노예들이 주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하지 않는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종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에베드’는 폭넓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 율법은 종을 그저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며 압제하지 못하게 하는 기능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 사회에서 종은 주인의 재산(소유)으로 취급되었지만, 율법은 그러한 주인의 권리보다 종의 권리, 즉 주인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살 곳을 찾는 권리가 우선된다고 말해줍니다. 약속의 땅,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도 풍성하고 안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17-18절. 가나안의 종교 문화에서는 제의를 위한 매춘 행위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런 가증한 행위로 번 소득을 하나님께 가져오는 것도 금지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그 돈으로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19-20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 금지됩니다. 이것도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독특한 점입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20-50%의 높은 이자를 부과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형제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자를 금지하지만, 타국인에게는 이자를 받도록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자기의 기업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웃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매우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생존이 달린 가난한 형제의 상황을 이익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타국인이 돈을 빌리는 경우는 주로 무역과 상거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이자를 받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21-23절.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꼭 지켜야 합니다. 서원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한다고 했다가 안 하기로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24-25절. 배고플 때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포도를 먹거나 곡식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것을 빌미로 이웃이 수고하여 얻은 것을 훔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율법은 이웃이 베푸는 사랑과 선의를 감사함으로 누릴 것과 그것을 악용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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