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유목 민족이었던 미디안은 추수 때가 되면 메뚜기 때처럼 밀려와서 식물과 가축을 남겨두지 않고 쓸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미디안의 약탈을 피해 산으로 도망가 굴에 숨어 지냈습니다. 이렇게 미디안이 주는 고통은 정치적 압제가 아닌 경제적 빈곤(미약함, 6절)이었습니다. 7년 동안 궁핍함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지금까지의 패턴대로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주셔야 하는데요. 이스라엘을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셨다. (2)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3)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그들의 불순종을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기대했던 응답은 선지자와 말씀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낼 능력 있는 사사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지금 너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사사가 아니라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궁핍함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응답이 아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응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대한 일종의 책망입니다.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경은 회개와 후회를 구분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고후 7:10). 세상 근심, 곧 후회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죄로 인한 결과를 슬퍼하고 후회하는 것이지, 죄 자체에 대하여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고통과 비참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훼손된 것에 대해서는 둔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곧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죄 자체를 미워하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것을 슬퍼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이유는 미디안으로 인해 당하는 궁핌합이란 고통때문이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그들의 죄가 그것을 반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들은 궁핍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더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참된 회개로 이끄시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를 예비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회개보다 먼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납니다. 그때 기드온은 미디안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잔뜩 겁에 움추린채 소심하게 타작하는 기드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는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큰 용사라고? 기드온을 놀리는 건가? 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원문에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큰 용사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부른 것은 조롱이나 반어법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드온은 큰 용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약하고 가난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큰 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큰 용사라 부르시면 그는 정말로 큰 용사인 것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애굽에서 일으키셨던 그 모든 기적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닙니까!”라고 불평하며 따집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드온의 불평에 해명하거나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어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고, 내가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대답하지요.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나는 그럴 만한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게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할 것이다”(16절). 메뚜기 때처럼 많은 미디안 사람들 앞에서 기드온은 우리는 세력도 약하고 힘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과 세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심함과 약함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 받은 표징을 구하며 예물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 예물을 반석 위에 두라 하고, 지팡이를 대자 불이 반석에서 나와 예물을 살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도 사라졌습니다. 그제서야 기드온은 자신이 지금 대면한 대상이 여호와의 사자임을 깨닫고 두려워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안심하라, 두려워말라,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해주셨고, 기드온은 거기서 단을 쌓고 “여호와 살롬” 곧 “여호와는 평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네 아비의 칠 년된 둘째 수소를 취해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과 아세라 상을 찍어서 그 나무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심한 기드온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음 날 밤에 그 일을 행하였지요. 기드온의 바람과 달리 기드온이 행한 일은 소문이 났고, 성읍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려고 찾아옵니다. 요아스(‘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그는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온 성읍 사람들이 이 일에 민감했고, 기드온도 그 반응을 예상하고 두려워합니다. 하니님이 주셨다는 신앙적인 이름의 뜻과 걸맞지 않게 풍요를 가져다 주는 우상을 의지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잘 살기 위해 세상의 방식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였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옷니엘의 경우처럼 백성들은 기드온이 사사, 곧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 구원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나팔을 불자 그의 가문인 아비에셀 족속이 모였고, 사자를 두루 보내매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에서도 사람들이 올라왔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구원할 표징을 구합니다. 유명한 양털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은 자신의 연약함과 믿음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세워달라고 기도합니다. 반복해서 요청해도 반복해서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가장 확실한 표징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믿음이 부족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의심할 때, 우리도 다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십시오”(막 9:24). 기드온에게 믿음의 확신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음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연약하고 믿음 없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기드온에게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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