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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826) : 사사기 10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아비멜렉 후에 돌라가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돌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대적이 누군지 말하지 않습니다. 아비멜렉 이후 돌라는 누구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을까요? 바로 아비멜렉 이후 혼란해진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자신으로부터 구원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밖의 대적들에게서도 구원받아야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로부터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이 죄악 가운데 빠져서 혼란할 때,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사사를 보내주셨습니다.


돌라에 이어 야일이 사사가 됩니다. 야일의 시대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3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들이 나귀를 타고 성읍을 소유한 것을 볼 때 왕과 같은 부와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이스라엘이 큰 죄에 빠지지 않고 대적들에 의해 압제당하지 않은 것은 사사 야일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것조차 야일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줍니다. 야일은 마치 왕과 같은 지위와 부를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자신과 자신의 집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이스라엘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6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악의 규모가 이전과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그 주변 나라의 거의 모든 신들을 섬겼고, 여호와 하나님은 버리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이 섬기는 신들은 이전에 이들을 압제하였던 민족의 신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그 우상을 섬긴 결과 얼마나 큰 고통과 비참을 겪었는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하는데요.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상을 충분히 숭배하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즉 우상을 더 열심히 섬기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이해하고, 더 열심히 우상을 섬기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민족들에게 파셨습니다. 즉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우상에게 그들이 가도록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요 징계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도록 막으시고 간섭하시는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멈추시면 즉시 우리는 우상에게 달려가고 우상의 노예가 됩니다. 우상은 처음에는 달콤하게 유혹하지만 이내 폭군이 되어 지배하고 학대합니다. 이러한 고통이 길어지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습니다.그런데 이번에는 그 부르짖는 내용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겨 주님께 범죄하였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놀라울 만큼 차갑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구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거듭거듭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말로는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이나 바알이나 누구든지 자신들을 고통에서 구원해주기만 하면 상관이 없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을 부르지만, 실제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원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에서 돌아서는 방식조차 우상숭배스러울 수 있습니다”(팀 켈러).


하나님의 단호한 대답에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10절에서 이스라엘의 기도는 “우리가 범죄하여 이렇게 고통을 받게 되었으니, 우리를 건져주십시오”였다면, 15절의 기도는 “우리가 범죄하였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십시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의 자비에 근거하여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이스라엘이 회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의 관심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를 이 고통에서 건져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구할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우상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16절 후반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말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요. ‘마음에 근심하셨다’라는 표현의 문자적 의미는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무언가를 더이상 참기 어렵다’입니다. 새번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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