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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901) : 사사기 13장

최종 수정일: 2021년 9월 3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구원을 시작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1절). 하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은 악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행위를 악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사사시대를 잘 요약해주는 문장,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21:25)라는 말씀을 보면, 그들의 행위는 자신들이 보기에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판단이 맞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기준입니다. 내 생각에는 괜찮아 보이고, 옳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문화나 가치관에 의해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의해 40년 동안 압제를 당합니다. 지금까지의 압제 기간 중 가장 긴 기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이 그런 압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부르짖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15:11을 보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에 익숙하여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원을 소망하지 않는, 철저히 절망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에 순응하며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구원자를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2-3절에서 우리는 ‘마노아’라는 사람의 가정을 봅니다. ‘마노아’란 이름은 일반적으로 ‘안식(처)’으로 이해되는데요. 그의 이름의 의미와 달리 그의 집안에는 ‘불임’이라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마노아의 가정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반영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악을 행하여 대적에게 압제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도 ‘불임’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지만, 여호와의 사자가 그 가정에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집의 불임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포도주와 독주를 삼가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지요. 이것은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이제 태어날 아들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사람, 즉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보통은 자원하여 나실인 서약을 하고 정한 기간 동안 나실인의 규정을 지키지만, 삼손의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7절),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실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바쳐져야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시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지만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삼손이 사사로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블레셋의 압제 하에 있어야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은 다윗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아내에게 이 소식을 들은 마노아는 하나님께 그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보내주시길 기도합니다(8절).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노아는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을 믿었지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태에서부터 구별된 나실인이었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노아는 아들을 이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궁금했고, 이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노아를 비롯한 모든 부모들은 곧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셔서 여호와의 사자를 다시 보내주셨지만, 여호와의 사자는 어떤 새로운 정보와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에게 이미 말한 것을 잘 지켜 행하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가르쳐 주시지 않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마노아와 우리 모두에게 적어도 두 가지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교훈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인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미 율법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아들을 기르기 위해 특별히 필요한 지식은 나실인에 관한 규정으로, 그것도 이미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불확실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이미 다 주셨고, 따라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방법,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이미 주신 말씀을 삼가 잘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마노아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정보, 더 좋은 방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의 불꽃과 함께 올라갈 때까지도 자신 앞에 있는 존재가 여호와의 사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참 미련하고 아둔한 사람이지요. 여호와의 사자는 단순히 천사나,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기묘’(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셨습니다(22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방법, 새로운 정보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고,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다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 앞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마노아는 뒤늦게 자신이 만난 존재가 여호와의 사자인 것을 깨닫고,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22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마노아의 아내가 더 현명합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다면 우리의 제사를 받으시지도 않으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도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렇게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이유,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신 이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죽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여인은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삼손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복을 주셨고, 여호와의 신이 그를 감동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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