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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902) : 사사기 14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틈을 만드시는 하나님


삼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자랐고,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삼손은 딤나로 내려갔다가 한 블레셋 여인을 보고 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집으로 올라와서 부모님에게 이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 가문과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많은 여자들이 있는데, 왜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여자를 아내로 취하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할례받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 없다는 말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은 다른 민족과의 혼인이 아닙니다.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과의 혼인입니다.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우리를 이끌려 할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일을 겪는 다른 부모보다 삼손의 부모의 심정은 더 복잡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삼손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분명히, 이 아이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부모는 삼손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겠다는 이 요구는 부모의 마음을 무척 고통스럽게 하였을 것입니다. 삼손이 지금 하려는 일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본문은 삼손의 부모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비록 지금 삼손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4절의 번역은 오해하기 쉬운데요.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라는 문장의 주어를 삼손에서 여호와로 바꿔야 합니다. 개역성경은 마치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칠 기회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하려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아니라 삼손은 자기 눈에 좋아보이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에 옳은대로 행하였습니다. 3절에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라는 표현과 7절에 “그를 기뻐하였더라”라는 표현은 “자기의 소견에 옳게”라고 번역된 구문(17:6; 21:25)과 같은 히브리어 숙어입니다. 삼손은 자기가 생각에 옳은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그런 죄와 불순종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한 신학자는 “여호와께서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다”는 말씀을 보며 그 당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너무 가깝게 밀착되어 있어서 그 사이에 하나님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며, 하나님께서 삼손을 통해 그 틈을 만들고자 하셨다고 설명하였습니다(마이클 윌콕).


삼손의 모습은 마치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삼손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사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두 자기로 요약했는데요. 첫째 그들은 충동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충동적으로 이끌렸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충동적으로 행하고 말씀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은 사사시대의 문제였고, 오늘 우리시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죄를 사용하셔서 블레셋(세상)에 밀착된 이스라엘(교회)을 떨어뜨리기 위한 틈(갈등)을 만드십니다. 신자가 세상과 밀착되고 결과적으로 세상과 같아지게 되려 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임합니까? 세상과의 평화를 깨뜨리시고, 갈등을 일으키시는 방식으로 임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익숙해진 신자에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4:4).


우리는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인 삼손의 시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삼손의 시대는 블레셋으로부터 가장 긴 기간 압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압제에서 구원해달라는 부르짖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잘 나타나듯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잘 어울리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블레셋의 압제 방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민족들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학대하거나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으로 압제하였다면, 블레셋은 달랐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문화적으로 압제하였습니다. 즉 블레셋의 문화, 가치관, 종교를 받아들이면 블레셋과 얼마든지 평화롭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자기 생각에 옳다면 말입니다. 이 일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은 사라지고, 결국 그들은 블레셋이 될 것입니다.


삼손의 부모는 삼손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위해 삼손은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갑니다.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어린 사자를 만나게 되고,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된 삼손은 염소 새끼를 잡듯 사자를 찢어 죽였습니다. 얼마 후에 삼손은 다시 블레셋 여인을 만나러 딤나로 갈 때 자신이 죽인 사자를 보게 되고, 시체에 벌떼와 꿀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꿀을 취하기 위해 사자의 주검을 만지지요. 나실인인 삼손이 포도원에 이르렀다는 것부터 불안한데, 그는 사자를 죽인 후에 율법대로 정결 의식을 행하지도 않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규례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꿀을 얻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자의 주검을 만집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율법, 나실인 규례에 대해 1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7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리고 그가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삼손의 눈에 좋았다(소견에 옳았다)”입니다. 삼손은 충동적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풍속대로 혼인을 위한 잔치를 배설합니다. 사람들은 블레셋 청년 30명을 신랑의 들러리(친구)로 함께 하게 하였습니다. 삼손은 그 30명의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내며, 7일의 잔치기간 내에 그들이 맞춘다면 각 사람에게 베옷과 겉옷을 주겠다고 합니다. 만일 맞추지 못한다면 그들이 삼손에게 30벌의 베옷과 겉옷을 주기로 내기를 하지요. 수수께끼는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였습니다. 답은 사자의 주검에서 나온 꿀인데요. 직접 보았거나 삼손에게 듣지 않고서는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답을 찾지 못하자, 삼손과 결혼할 여자를 협박하였고, 그녀는 삼손에게 답을 말해달라고 울며 간청하였지요. 삼손은 답을 말해주었고, 여인은 그 답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 그들은 기한 내에 답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진상을 알게된 삼손은 분노하여서 블레셋 사람 30명을 쳐 죽인 후에 그들의 옷을 빼앗아 그들에게 주고 집으로 올라옵니다. 이것이 블레셋과의 첫 번째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백성들을 위한 것도 아니라, 그저 자신의 분노와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삼손이 이렇게 제멋대로 굴며 악을 행할 때에도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틈을 만드시기 위해,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삼손 같은 죄인도 사용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물을 수 있지요. 그것이 정당합니까?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사용하셔야 하는 것 이닙니까? 라고요.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올바로 믿고 올바로 행하는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셔야 합니까? 그렇다면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통 죄인들 밖에 없고, 모두가 죄악된 행동을 하는 그때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고 실제로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와 결점 조차도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습니다.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롬 8:28).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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