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1) 제자들에게 복을 선포하시다
마태복음 5:1-3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 앞에 구별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리”가 있고, “제자들”이 있습니다. 마태는 왜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였을까요?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공적으로 선포한 후에 가장 먼저 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백성들의 병과 악한 것들을 치료하시자,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태는 그들을 ‘무리’라 불렀습니다. 무리는 자기의 필요를 따라 스스로 나왔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나왔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큰데요. 마태복음에서 무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표현할 때도 사용되었지만, 26장 이후부터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받으라고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현하는데도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께 나왔던 무리는 필요에 따라 돌아서기도 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주님의 은혜와 보호 안에 있었기에 돌이켜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왔고,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선포하신 말씀은 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당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에 대한 오해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상하게도 한사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랐던 메시아와 예수님은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메시아는 다윗 왕과 같이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하고, 먹고 살 걱정을 없애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복은 무엇인가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이 정치적 억압, 가난, 질병 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이루어줄 메시아를 원했지요.
물론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비참한 삶을 긍휼히 여기셨고, 그것을 온전케 해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사람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비참하다고 느끼는 가난, 질병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그 비참한 증상들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인 죄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천국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먼저 천국과 복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이해를 교정해주셔야 했습니다. 그들이 정말 간절하게 받기 원하는 복은 그들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는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야 그 복을 사모하고 구할테니까요.
우리는 어떤 복을 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구원자를 찾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복을 구하고, 그 복을 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의 복된 말씀을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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