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33) 금식에 관한 교훈
마태복음 6:16-18
마태복음 6:1-18은 신자의 합당한 선행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그 핵심 원리는 6:1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서, 사람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이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선행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악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제와 기도, 금식과 같이 그 자체로 선해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 앞에서 악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식사를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금식을 하는지 잘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사람들은 매우 슬픈 기색을 하고, 아주 고통스럽다는 듯이 일그러진 얼굴을 합니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내가 지금 금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해서, 내가 금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합니다. 멋을 내라는 말이 아니라 평소와 같이 단정하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 보이기 위해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8:9-14에 보면 자기가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바리새인이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바리새인은 세리와 떨어져 기도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를 하나님께 말합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죄를 짓지 않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랑을 늘어 놓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드린다고요.
이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한다고 하였는데요. 보통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며 회개할 때 금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달랐습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 하면 칭찬을 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들은 다른 사람과 차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금식을 하였고,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에게 금식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고, 금식을 몇 번 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횟수였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경건하게 보이는 것이었지요.
금식의 의미, 곧 우리가 금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속죄일에 유대인들은 의무적으로 금식을 해야 했습니다. 이때 금식은 자신의 죄에 대한 비통함의 표현입니다. 자신의 은밀하고 뿌리 깊은 죄, 부끄러운 죄를 애통해하며 회개할 때 금식을 하였던 것이지요. 한편 대속죄일 외에도 국가적인 환난이나 재앙이 있을 때 하나님께 슬픔과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구할 때도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때 금식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절박한 표현입니다. 이렇게 금식의 본질은 육체의 생명과 힘을 공급하는 음식을 절제함으로 하나님만이 나의 죄에서, 인생의 큰 환난에서, 인생의 중요한 일에서 나의 도움이 되시고, 의지할 분이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금식을 자랑하며 자기 의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금식은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요 피난처이심을 인정하며 하는 것인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그런 금식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과 하나님께 도움을 받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일까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의 칭찬이 더 가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의 금식이 오직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것이 되길,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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