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36)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25-34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라보고 지향하는 대상을 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땅과 땅에 속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들은 본질적으로 벌레 먹고, 녹슬고, 도적질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며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피곤하고, 낙심되며 허망합니다. 반면 하늘에 속한 것들을 추구할 때에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안전하게 지켜지고 보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것을 추구하는 삶은 영원히 복된 삶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시선, 섬김을 하나님께만 두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땅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추구하며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25절과 31절에 두 번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염려하지 말라는 것들은 사실 우리가 늘상 염려하는 것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속으로 ‘아니 염려가 안되야 염려를 안하지요..’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새보다 훨씬 귀하게 생각하시는 우리를 돌보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잠시 피었다가 지는 들의 백합화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된 우리에게는 더욱 아름답게 입혀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주시는 분이시지요. 그것을 신뢰하십시오.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는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처럼, 나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염려하고 낙심하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갈까요? 기도한다는 것은 곧 소망한다는 것인데요. 하나님의 자녀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가 팔복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 나라와 의’란 그리스도와 함께 임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살아가며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실현해가기를 구하는 삶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나를 사랑으로 돌보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며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없으니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의 인생과 생명을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불행한 사실은 우리중 누구도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라도 자라게 할 수 없고, 염려한다고 내일의 일을 바꿀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인생과 생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보호해주시고 필요를 따라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니 먹고 사는 일에 나의 인생이 달린 것처럼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의 인생의 가장 귀한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그 일에 힘쓰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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