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37)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6
오늘은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판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긍정적으로는 ‘판단한다’라는 의미가 있고, 부정적으로는 ‘비판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을 금하신 것 같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어떨까요?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정죄하시고 비판하셨던 모습을 보고, 서신서에서도 바울이 거짓 복음을 전하는 교사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비판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신 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핏 이 말씀은 ‘네가 남에게 비판을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너도 남을 비판하지 말아라’는 의미로 생각될 수 있는데요. 여기서 비판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분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비판을 듣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판단하거나 비판할 때 우리의 최종 판단자이시고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고 우리의 의를 자랑하기 위해서 비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수치를 주기 위해서 비판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실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의 허물과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그의 명예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차가운 율법주의적 태도로 옳다는 명분으로 형제를 배려하지 않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우리는 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여서, 그를 죄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정직하게 그러나 너그럽게 조언하고, 복음의 진리와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이단을 정죄하고 거짓교리를 비판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사랑과 인자로 우리에게 조언하시고 진리로 우리를 판단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병행 본문인 누가복음 6:36-42과 비교하면 본문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고 선하게 대하라는 문맥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3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37절에서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고 원수였던 우리를 행위대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먼저 사랑하시고 큰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서로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을 판단하여 말할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혹 형제의 죄와 잘못을 판단하고 말해주어야 할 때에 그것은 바른 진리에 근거해야 할뿐 아니라 사랑과 자비로 행해져야 합니다. 형제를 향해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로 행하고, 나 자신을 향해서는 엄격한 진리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반대로 행하고 있는지요. 끝으로 우리는 잘 책망해야 하는 한편, 또 잘 책망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 조언해 주고, 때로는 진리의 말씀으로 따끔하게 책망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판단과 조언을 하나님의 판단과 조언으로 여기고 겸손히 그리고 달게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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