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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1029) : 산상수훈(40)

산상수훈(40) 좁은 길과 넓은 길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과 넓은 문,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좁은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하지만 좁은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요한복음 10:9에서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6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것입니다.


이 문이 왜 좁은 문인지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유일한 진리란 없다고 말하고, 오직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라고 비난합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만 믿고,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좁은 문 뒤에 영광스럽고 넓은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좁고 불편한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 곧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고 예수님을 좇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 길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은밀하게 행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하는 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동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켜야 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영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고난과 핍박이 보장된 길이지요. 누가 이런 길을 걷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큰 문이 있는 넓은 길로 갑니다.


사실 두 개의 문과 두 개의 길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넓은 길이 복되고 안전해 보이고, 좁은 길은 불편하고 위험해 보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정반대의 실상이 나타납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큰 문과 넓은 길은 멸망으로 연결됩니다. 또한 좁은 길은 단지 희생과 고난의 길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은 참된 자유를 주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고난과 핍박이 있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이 길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일 뿐만 아니라 걸어가는 동안에도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과 위로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복된 길입니다. 무엇보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달콤한 임재를 누리는 길입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삶, 곧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삶은 좁은 길이지만 복된 길입니다. 힘든 길이지만 기쁨이 있는 길입니다. 좁은 길이지만 복되고 은혜로운 이 길을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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