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44)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
마태복음 7:24-27
참된 믿음은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킵니다. 참된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지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관계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다시 회복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생명이 우리에게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이 가지에서는 당연히 참포도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선행입니다. 신자의 선행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존재가 행위에 앞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나무여야 합니다. 가시나무가 노력한다고 포도를 맺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포도나무는 자연스럽게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집을 짓는 비유로 동일한 교훈을 주십니다.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집 자체를 잘 짓는 것 이전에 기초가 되는 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와 반석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가 선행의 열매를 맺고,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서 우리의 선행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비유는 같은 교훈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무와 열매 비유는 존재와 행위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열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써, 열매 맺는 삶에 관해 뭔가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반면 집을 짓는 일에 관한 비유는 반석의 우선성,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건축의 특성상 계획하고 열심히 일하는, 뭔가 능동적이고 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삶에는 이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있습니다. 성화는 자연스럽게 맺히는 열매이면서 동시에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지혜롭고, 누가 어리석습니까? 당연히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집의 설계를 얼마나 잘 하고, 얼마나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얼마나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었는지와 상관 없이 그렇습니다. 기초가 그 모든 것에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태풍이 밀려와 강한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났을 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겠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집보다 중요한 것이 기초입니다.
신자의 삶을 보면 다 비슷해 보입니다. 주일에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생각도 비슷하고, 삶의 방식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러한 신자의 삶은 마치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정말 가치 있고 영원한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집 보다 집을 받치는 토대, 기초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집의 토대는 무엇입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 말”이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가리키지요. 산상수훈의 내용은 “예수님처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순종하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삶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은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더 사랑하는 것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복을 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인맥을 쌓기 위해, 위로를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은 결국 “나를 위해”로 수렴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누가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