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었다
사무엘상 31장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6절은 사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6절은 엘리와 그 아들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중히 여겼던 제사장 엘리, 하나님보다 자기의 왕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왕 사울,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히 여기는 삶의 모습이 닮았고, 그로 인해 결국 비참하게 죽는 모습도 닮았습니다. 사울은 스스로 자기 칼에 엎드려 죽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평생 손에 칼과 창을 놓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고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며 칼을 휘둘렀던 사울은 결국 자신의 칼에 죽습니다.
사울의 죽음 함께 백성들이 성읍을 버리고 도망합니다(7절). 사울의 죽음은 개인의 비참함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왕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그 모든 피해는 백성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비참은 백성들이 자초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구했던 왕은 바로 사울과 같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와 같은 왕을 구하여 그 왕의 다스림을 받는 삶의 결과는 세상 사람들이 당할 비참한 결과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지 않고, 유력한 사람에 의해 휘둘리거나, 세상의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교회 역시 세상이 당할 비참한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1-13절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의 시체가 벧산 성벽에 걸려 방치되어 있는 것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수습하여 장사지내는 모습입니다. 과거 길르앗 야베스가 암몬 자손의 침략을 받았을 때 사울이 백성들을 이끌고 구해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삼상 11장). 오래 전 사울에게 은혜를 입었던 길르앗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수습합니다. 나중에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칭찬하며 보답하겠다고 말하는데요(삼하 2:4-7).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운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죽음에 관하여 아더 핑크 목사님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는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보니 사울의 삶과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수많은 백성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1절). 그리고 그의 세 아들이 죽는 모습도 보았습니다(2절). 그리고 자신도 활에 맞아 임박한 죽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이 사울에게는 끔찍한 고통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추구한 삶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파괴적인지를 보여주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습니다. 마지막까지 사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내 뜻대로 살았던 것처럼, 내 뜻대로 죽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었다’는 말이 참 두렵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매주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어떤 감사와 기쁨도 없이 무감각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냉담하고 무미건조하다면, 우리가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누군가 우리의 귀에 복음의 말씀을 들려줄 때에도 우리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없고, 냉담하고 무감각하게, 그렇게 죽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 우리에게 유일한 위로는 사울과 같지 않은 영원한 왕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이 계시며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다스리시는 왕이시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셨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해 겸손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 겸손한 왕을 닮아가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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