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사람의 말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압살롬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왕궁을 떠나는 다윗의 대조적인 모습이 이어집니다. 먼저 1-14절은 다윗이 도피길에서 만난 두 사람과의 이야기이고, 15-23절은 예루살렘에 입성한 압살롬이 만난 두 사람과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다윗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다윗이 감람산을 지날 때 므비보셋의 신하인 시바가 많은 음식을 가지고 다윗에게 옵니다. 시바는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재산을 줄 때, 그를 섬기라고 붙여준 사람입니다. 흥미롭게도 시바는 다윗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호의를 베풉니다. 사울의 추격도 견디고 마침내 왕이 된 다윗이니, 압살롬으로 인한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시바는 다윗의 신뢰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위태로운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자신의 충성심을 더욱 드러냅니다. 다윗의 어려움을 도운 것은 선한 일이지만, 그 일의 동기와 과정은 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현재 자신이 섬기는 주인을 배반하고 모함한 것입니다. 그리고 급히 도망하던 다윗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선과 악보다 자신의 목적을 우선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만난 두 번째 사람도 사울 집안에 속한 사람입니다.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쫓아오며 저주를 하는데요. 다윗이 사울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심판으로 다윗을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윗의 죄는 사울 집안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시므이는 그저 자기의 입장에서 다윗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뱉어냈을 뿐입니다. 다윗으로서는 충분히 억울하고 분노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곁에 있던 아비새가 자신이 가서 시므이의 머리를 베겠다고 먼저 나서니 모른척 허락해 줘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10절)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것까지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윗은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주고 함부로 말해도 하나님은 나를 아십니다. 모든 진실을 아시고 가장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의 억울한 일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사람들의 말로 인해 상처를 받고 억울한 일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 선하신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이제 압살롬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합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전략가인 아히도벨이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압살롬을 맞이하는 사람 중에 의외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친구라 불리며 누구보다 다윗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 후새였습니다. 후새는 다윗을 배신한 것처럼 꾸미고 압살롬에게 다가왔습니다. 압살롬은 의심 없이 후새를 받아들입니다. 한편 예루살렘을 정복한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이후의 일을 묻습니다. 그는 다윗이 남겨둔 후궁을 사람들 앞에서 범하라고 합니다. 다윗과 화해할 가능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행위이지요. 사람들의 마음을 분명히 하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23절은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탁월하고 확실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아히도벨의 악한 계획은 압살롬을 승리하게 하는 듯 보이지만 하나나님께서는 그 악한 계획을 잠시 허용하셔서 다윗의 징계를 위해 사용되게 하시지만, 마침내 그 계획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새의 나쁜 계획을 저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였습니다. 반면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악한 계획을 그대로 따릅니다. 자신을 위해 악을 행하는 자가 승리하는 듯 보이나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자는 하나님을 위해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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