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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문답 성경공부 : 마태복음 10장

[질문1] 마태복음 10:5에 보면 이방인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에게만 가라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답변1]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생각할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파되고, 그다음에 이방인들에게 전파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마태복음은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전도 역시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질문2] 마태복음 10:9-10은 무슨 의미인가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답변2] 복음을 전하러 떠날 때, 복음 전하는 자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런 것들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복음 전하는 일을 미루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기에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도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공급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질문3] 마태복음 10:16에서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요?


[답변3] ‘지혜롭다’고 번역된 단어(헬, 프로니모스)는 ‘분별력 있는, 현명한’이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일반적으로 뱀은 지혜롭고 비둘기는 순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니모스’라는 단어가 70인역 성경(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세기 3:1)에서 ‘간교하다’에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 때문에, 성경의 문맥에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데요. 성경에서 뱀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이 단어(프로니모스)는 누가복음 16:1-8에서 불의한 청지기에게 ‘지혜 있다’라고 칭찬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행한 일은 옳지 않지만 지혜로웠습니다. 그의 지혜로움은 지금 있는 재물을 사용해서 미래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세속적인 사람들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지혜가 있다면, 신자는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더 지혜로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런 예를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뱀과 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지혜롭게 살려고 하는데 이리 떼와 같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하는 신자는 더욱 지혜로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뱀 같은 지혜로움은 비둘기 같은 순결함에 의해 제한됩니다. 신자가 추구해야 하는 지혜는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제한되는 지혜입니다.



[질문4] 마태복음 10:34-35은 무슨 의미인가요?


[답변4]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화평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화를 위해서라고 하시니 조금 당황스러운데요. 다음 구절을 볼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으로 인한 불화의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신앙이 없는 가족이 주말에 가족을 위해 여행을 가자고 말합니다. 그때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그럴 수 없다고 말하게 되면, 갈등과 불화가 생기겠지요. 예수님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것, 곧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길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모든 것들과 불화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데요.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예수님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할 때 우리의 가정이 불화하고 불행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족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라는 말씀이고, 그럴 때 불화와 갈등이 생겨도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깐 갈등과 불화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 아니라, 합당한 질서 아래 있을 때 비로소 숭고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전부로, 가장 우선적으로 사랑할 때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도 참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질문5] 마태복음 10:40-42을 삼위일체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40절을 볼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은 혼자서 행하신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답변5]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40절에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니까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삼위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 밖으로의 사역은 구분되지 않는다(Opera trinitatis ad extra indivisa sunt)". 삼위 하나님의 외적 사역, 곧 창조와 섭리, 구속의 모든 사역은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확장하여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내신 성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새삼스럽습니다.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의 영원하고 충만한 사랑의 교제 안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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