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성경공부 : 마태복음 13장
- Lee Juman
- 2022년 4월 22일
- 3분 분량
[질문1] 마태복음 13:17에서 ‘선지자와 의인’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선지자와 의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고, 천국의 비밀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답변1]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이 있고, 허락되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어 돌이켜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17절에서 선지자와 의인이 복음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말한 까닭은 바리새인의 경우와 다릅니다. 그들이 제자들이 보고 들은 복음을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 못했고, 듣고자 하였지만 듣지 못한 까닭은 단순히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 오실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지만,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는 제자들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17절은 16절에서 말하는 제자들의 복이 얼마나 더 탁월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질문2] 마태복음 13:33. '여자', '누룩'과 같이 부패하거나 부정한 것으로 해석될 법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16:11의 누룩 비유와 비교해 주세요.)
[답변2] 성경에서 누룩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은 맞습니다. 마태복음 16:11도 그렇습니다. 누룩은 본래의 성질을 변질시키기 때문에, 잘못된 교훈이나 가르침을 누룩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3:33에서 누룩은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누룩 비유는 앞의 겨자씨 비유와 비슷한 교훈을 주는데요. 천국이 지금은 작고 미약해 보이지만, 매우 커지고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여자’도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요리를 하는 여성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3] 마태복음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답변3] 51-52절의 집 주인 비유가 13장 비유 설교의 결론입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그 모든 것을 깨달은 제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필사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이고 따라서 권위 있는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집의 창고에는 새것과 옛 것이 함께 보관되어 있지요. 모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집 주인은 옛 것과 새것을 가져와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옛 것은 구약 또는 율법을, 새것은 신약 또는 천국 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약은 구약을 폐기하지 않고, 복음이 율법을 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약은 구약에 기초하고 구약은 신약을 지지합니다. 복음은 율법을 완전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신약과 구약, 복음과 율법을 능숙하게 구분하고 바르게 전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4] 마태복음 13:58의 관점에서 보는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과 이적,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이 궁금합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시니라”(마 13:58).
[답변4] 일단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과 오늘날 일어나는 기적은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시고, 구약성경에 계시된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지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그런 의미에서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시고, 생명이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구원자요, 왕이심을 가르쳐 주기 위해 행하신 기적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기적은 그런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더 이상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시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놀라운 일들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현대 의술이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게,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의 기술과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방식으로는 고쳐주시지 않으니 치유받는 것은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방식이든 초자연적인 방식이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병을 치유해 주실 수 있고 치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58절에서 “믿지 않음”이란 표현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에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믿음이 적고 부족한 경우에는 책망하시면서도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 나오지 않고 도리어 거부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능력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구하지 않는 자가 받을 수 없고, 죄를 인정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를 용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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