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Lee Juman

문답 성경공부 : 마태복음 16장

[질문1] 마태복음 16:4에서 ‘요나의 표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답변1] 요나의 표적의 의미는 마태복음 12:38-41에서 알 수 있습니다. 12:40은 요나가 3일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3일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고, 조금 더 확장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41절은 요나의 표적을 회개와 정죄, 곧 심판과 연결합니다. 악하고 잔인하기로 소문난 니느웨 사람들도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는데, 이 세대는 요나보다 크고 위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고 믿지 않음으로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에게 보일 표적이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미 행하신 많은 기적들이 있음에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에게 다른 어떤 표적도 소용이 없고, 오직 이 표적이 가리키는 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곧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표적이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정죄(심판)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을 이렇게 이해하고 마태복음 16:1-4로 가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이미 오병이어 기적을 포함하여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가리키는 표적이고, 믿는 자에게 구원의 표적이 되고,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정죄의 표적이 됩니다.

[질문2] 마태복음 16: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자’라는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답변2] 인자(人子)란 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인데요.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실 때 자주 사용하셨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하셨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인자’라는 표현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는데요. 이 표현의 구약적 배경이 되는 다니엘 7:13-14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는 모든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가지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라 칭하셨을 때, 그 의미는 참 사람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여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인자’란 표현은 일반적으로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기에 이 칭호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16:20) 하신 말씀의 의미와도 잘 어울리는 칭호인 것 같습니다.

[질문3] 마태복음 16:14. 예수님의 능력과 행하신 일들을 시샘하고 의심하는 자들이 많았을 텐데, 이단/사탄/귀신들린 자와 같이 더 악랄한 평은 없었을까요?

[답변3] 물론 예수님에 대해 악의를 갖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12장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지요. 다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그런 모든 평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예수님을 좇는 많은 무리들이 어떤 생각으로 예수님을 좇고 있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다른 선지자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질문4] 마태복음 16, 18장에는 “교회”(에클레시아)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다른 공관복음에는 없는 특수한 단어인데요. 찾아보니 70인경에는 ‘회중, 공동체, 총회’를 의미하는 ‘카할’이라는 단어가 쓰였어요(예를 들면, 시편과 레위기 등에서 총회, 집회라고 번역되었고요). 과연 예수님이 실제로 제자들에게 말한 그 시점에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교회’라는 용어를 쓰셨을지 궁금하네요. (다양한 의견이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의견들이 있는지, 그중 우리가 인정할 만한 의견이 어느 것인지 알면 좋을 것 같아요).

[답변4] 에클레시아(교회)는 일반적으로 공동체를 의미하지만, 유대적 상황, 특별히 70인역 성경에서는 자주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로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로 이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에클레시아’ 앞에 ‘나의’라는 표현을 붙이셨는데요. 문법적으로 볼 때, ‘나의’가 강조된다고 합니다(프란스).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 표현(에클레시아)을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정의하시는데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의 정체성은 이스라엘이란 민족에 있지 않고, ‘나의’ 곧 예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조직적인 교회의 의미로 사용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제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로 새롭게 세워질 것을 말씀하셨고, 이후에 사도들과 신자들이 유대교와 분리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울 때 자연스럽게 이 교회(에클레시아)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야말로 참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질문5] 마태복음 16:20. 전에는 오히려 이 부분(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거하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은 이 말씀을 하신 시기와 관련이 있을까요?

[답변5] 앞에서 예수님이 치유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이것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8:4; 12:16).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예수님께서 아직 자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기적에 대한 열광으로 예수님께 몰려오는 것을 경계하셨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16:20)과 17:9은 조금 다른 문맥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한 후에 이 말씀을 하셨고, 17:9에서는 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이신 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정치적 메시아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오해와 분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편으로 가르침과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직접 말하지 못하게 하여서 오해와 혼란을 막으셨습니다.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와 결합될 때 완전해질 것입니다.

[질문6] 마태복음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답변6] 27절은 비슷한 내용의 다른 본문(19:28; 24:30-31; 25:31)과 비교할 때 최후 심판의 장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분은 최후의 심판자(재판장)로 오실 것입니다. 이어지는 28절은 예수님이 그 종말론적 심판의 날이 있기 전에, 본문의 표현을 따르면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28절은 재림의 날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재림 전에 예수님께서 그의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28절에서 예수님께서 그 왕권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이어지는 마태복음 17:1-8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 17:1의 ‘엿새 후’는 이 말씀을 하신 날로부터 엿새 후라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6:28에서 말한 예수님이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베드로후서 1:16-18의 지지를 받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때(마 17:1-8)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말하면서,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벧후 1:1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크신 위엄과 성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신 모습을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조회수 1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