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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문답 성경공부 : 마태복음 7장


[질문1] 마태복음 7:1-5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형제의 눈 속에 이는 티를 빼기 전에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 눈의 들보를 뺀 후에 형제의 티를 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판, 정죄에 해당하지 않나요?


[답변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정죄, 비판받을 만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비판 자체를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비판을 하되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며 하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들보를 빼고 형제의 티를 빼주는 것은 이런 비판에 해당합니다. 단순히 형제의 잘못을 정죄하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잘못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자신에게는 더 큰 잘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교만한 마음으로 형제를 정죄할 수 없겠지요. 자신은 더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사랑으로, 겸손히, 형제를 위하여 조언, 권면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2] 마태복음 7:1에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원어의 의미가 모든 종류의 비판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비판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요?


[답변2] 본문은 모든 비판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지하다시피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정죄하시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거짓 교훈을 전하는 자들을 비판하였습니다. 즉 성경은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금지하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너 비판받기 싫지? 그러니까 너도 비판하지마”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비판하는 자를 비판하는(판단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즉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하기 전에 우리의 최종 판단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비판이 하나님의 판단에도 합당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여서, 그 일로 하나님께 비판(판단)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내용(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와 내 눈에 있는 들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판(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의 판단이고, 그 기준으로 자신을 먼저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의 범위를 말한다면,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으로, 목적을 생각할 때에는 비판이 교회의 덕과 형제의 유익을 세우는지로 볼 수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여 6절은 거룩한 것과 진주, 곧 복음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심지어 공격당할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기쁜소식(복음)도 그렇다면 비판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즉 우리는 비판을 할 때나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을 잘 헤아리고 사랑으로 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질문3] 마태복음 7:6의 비유의 의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1-5절의 문맥과 잘 연결이 안 되는데요. 설명 바랍니다.

[답변3] 아마도 앞에서는(1-6절)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6절에서는 대화의 상대를 개와 돼지로 비하하는 것으로 보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6절의 의미를 이해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절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복음 또는 보배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개와 돼지는 복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모든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죄인은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가치 없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는 복음을 알고 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6절은 그렇게 이 거룩하고 보배로운 복음을 알게 된 우리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1) 복음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여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부패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되 지혜로운 방법으로, 사랑으로 인내하며 권면하고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다 듣게 될 비난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되, 가장 귀한 복음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전해야 합니다.


[질문4] 마태복음 7:29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신 것(산상수훈)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고 했는데, ‘권세 있는 자’와 ‘서기관들과 같은 것’은 각각 무슨 의미인가요?


[답변4] 서기관은 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하여 가르치는 전문적인 율법학자입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잘 알았고, 율법에 대한 다양한 해석 전통에 대해서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기관의 가르침을 들을 때 율법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고 거기에서 나오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런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한 여러 해석 전통을 말하면서, 누구의 해석이 더 옳은지 말하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해석하는 방식이 아니라, 율법을 만드신 분이 율법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방식이었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께는 율법의 창시자로서의 권세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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