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 벨직 신앙고백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의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19:157).
벨직 신앙고백의 가치
벨직 신앙고백(1561년)은 위대한 종교개혁의 세기였던 16세기에 하나님께서 벨기에 땅에 세워주셨던 종교개혁자 귀도 드 브레에 의해 작성된 신앙고백서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과 도르트신경(1618-19년)과 함께 도르트 회의에서 공인되어 지금까지도 “하나 되는 세 고백서”(Three Forms of Unity)로 불리며 개혁교회의 교리 표준문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귀한 신앙고백서입니다. 16-17세기에 많은 신앙고백서들과 요리문답서들이 작성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벨직 신앙고백은 특별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종교개혁의 불길이 한참 일던 16세기 유럽의 한복판에서, 박해 아래 있던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붙들어주시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선물과도 같은 신앙고백서입니다. 귀도 드 브레는 목숨을 내놓고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했고 또 그것을 박해 받는 교회를 위하여 천명하였습니다. 이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수많은 교회들이 유익을 받아왔는데,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던 터툴리안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벨직 신앙고백은 귀도 드 브레의 순교 이후에 오히려 더 힘을 떨쳤고 지금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개혁교회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성경의 가르침, 곧 신학과 복음의 대요(大要)를 탁월하게 요약하는 신앙고백서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수많은 성경을 자구 그대로 인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인용하며 암시하는 매우 ‘성경적인 신앙고백서’이면서도, 첨예한 교리와 신학의 내용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매우 ‘신학적인 신앙고백서’이고, 교회사에 나타났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주는 매우 ‘실천적인 신앙고백서’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성경에서 모든 근거를 찾으며, 교리적으로 적확하고, 역사적으로 해박하며, 실천적으로 적실합니다.
벨직 신앙고백의 이름
벨직(벨기에) 신앙고백의 다른 이름은 네덜란드 신앙고백입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에 걸친 17개주를 통칭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네덜란드”(Nederland)는 “저지대”(Low Land)라는 의미인데, 이 지역은 산이 거의 없고 국토의 삼분의 일 정도가 해수면보다 낮았기 때문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이 작성되었을 때는 나라들이 나누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는 이 신앙고백을 네덜란드 신앙고백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앙고백서는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서, 벨기에 사람인 귀도 드 브레에 의해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벨직(벨기에) 신앙고백”으로 불립니다.
벨직 신앙고백의 역사적 배경
네덜란드 교회는 종교개혁의 자연스러운 순서를 따라서 루터의 사상으로부터 교회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네덜란드는 시기상으로 볼 때에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개신교회로의 방향 전환을 제일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저지대) 지역은 일찍이 루터파의 영향을 받아서 1518년에 이미 루터의 저서들이 화란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또 1523년에는 신약성경이 화란어로 번역되었으며, 1523년부터 화란의 개신교도들이 순교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1530년까지는 루터교회가 네덜란드 지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면, 1531년부터 1540년 중반까지는 급진적인 재세례파가 네덜란드(저지대) 지역의 개신교회를 주도해 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40년 중반부터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는 개혁교회가 네덜란드(저지대) 지역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바로 이 저지대 네덜란드 지역에 칼빈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던 시기에 귀도 드 브레에 의해 작성된 문서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투쟁하였던 북쪽 네덜란드(화란)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하여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신음하던 남쪽 벨기에 지역에서 작성된 고백서입니다. 비록 스페인의 박해와 탄압이 극심하였지만, 벨기에 지역에 뿌려진 종교개혁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생생한 생명력을 발휘하던 중에 맺게 된 한 열매가 바로 벨직 신앙고백서입니다.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는 벨직 신앙고백서가 큰 박해의 시기에 가톨릭의 땅에서 작성된 신앙고백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역시 편안한 때에 나온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큰 논쟁이 있던 때에 작성되었고, 도르트신경도 네덜란드로 보아서는 80년 독립전쟁 중에 작성되었고, 교회적으로는 알미니안주의자들과의 첨예한 신학논쟁 중에 작성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도 잉글랜드가 왕당파와 의회파로 나뉘어져서 내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작성된 문서입니다. 벨직 신앙고백도 그러합니다. 벨직 신앙고백이 작성된 때도 큰 핍박의 시대였고 많은 사람이 신앙을 지키다가 죽어가던 큰 시련의 때였습니다. 귀도 드 브레 자신도 이 신앙고백을 작성하고 6년 뒤에 붙잡혀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져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시편 119:157의 말씀처럼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는 심정으로, 또는 시편 119:161의 말씀처럼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하는 심정으로, 어려움이 많고 환란이 많으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하여, 그리고 후생 세대의 영적 번성을 위하여 증거를 남긴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렇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편안한 역사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신앙의 투쟁이 그 가운데 있었고, 핍박과 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속에서도 주의 말씀의 증거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기”(시 119:86)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여러 가지로 어렵고 곤고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우리를 둘러싼 영적인 환경은 신앙을 지켜 나가기에 여러 면으로 어려운 환경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오히려 이러한 어려움의 때에 더욱 연단을 받고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벨직 신앙고백서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오히려 우리는 이 어려움의 때에 신앙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고 영적으로 더 도약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19:157)라고 하였고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시 119:161)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중심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지키며 고백할 때, 우리는 바로 지금을 우리의 신앙의 황금기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서문’(23-29)과 ‘서론 1’(33-40)의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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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위한 질문
1. “하나 되는 세 고백서”(Three Forms of Unity)로 불리는 개혁교회의 표준문서들은 무엇입니까?
2. “개혁교회의 소중한 유산인 벨직 신앙고백은 매우 ( ) 신앙고백서이고, 매우 ( ) 신앙고백서이며, 매우 ( ) 신앙고백서입니다.” 빈칸을 채우고, 그 이유를 설명해 봅시다.
3. 벨직(벨기에) 신앙고백의 다른 이름은 무엇입니까?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네덜란드 지역에 종교개혁 사상이 들어온 흐름을 설명해 보십시오. 벨직 신앙고백서는 어떤 상황에서 기록되었습니까?
나눔을 위한 질문
1. 벨직 신앙고백은 큰 박해 가운데 기록되었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과 시편 119편 157절과 161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고난과 신앙의 관계(예,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난 가운데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2. 벨직 신앙고백 초판의 앞표지에는 “이 신앙고백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수성을 따라 살기를 열망하는 네덜란드 신자들의 공동 합의로 만들어졌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표지 하단에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라는 성구가 적혀 있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귀도 드 브레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넘어서는 공교회의 문서이며,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따라 살면서 드러내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작되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신자의 마음과 입에 머물지 말고, 심장과 손과 발로 표현되어야 마땅합니다(송영목, 24).
귀도 드 브레와 네덜란드 교회의 신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신앙고백서를 출간했을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머리와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심장과 손과 발로 표현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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