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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벨직 신앙고백] 제2조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편들

제2조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편들


우리는 두 가지 방편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첫째는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를 통해서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과 같이 우리 눈앞에 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크고 작은 피조물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활자와도 같아서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금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그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자신을 알리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부릅니다. 계시란 “열어서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마치 커튼을 열어서 감추어져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듯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 관하여 열어서 보여주신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논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편(두 가지 계시)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첫 번째 방편은 “일반계시” 또는 “자연계시”라고 불리며, 두 번째 방편은 “특별계시” 또는 “초자연계시”라고 불립니다.



자연계시에 관하여


첫째는 일반계시 또는 자연계시입니다. 자연계시는 한 마디로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를 통한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주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과 같이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크고 작은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활자와 같습니다.


예술 작품을 보고 작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주를 보며 우리는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지혜롭고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어떤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우주를 보면서도 그것을 하나님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계시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계시의 첫 번째 요소는 “내부의 자연계시”로, 사람 안에 있는 자연(본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롬 1:19). 이것을 ‘신지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종교성’이나 ‘종교의 씨앗’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자연계시의 두 번째 요소는 “외부의 자연계시”로, 사람 밖에 있는 자연(우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그 우주를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섭리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계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의 이해가 어두워져서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참되게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인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두 뒤틀리고 왜곡되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우상을 섬기거나 자기 자신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무관심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계시는 이렇게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책임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에는 충분한 계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특별계시에 관하여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고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특별계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계시입니다. 특별계시는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주어졌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고, 이후에 그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그 계시의 내용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특별하게 알리시기 위해 역사 가운데 활동하신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기 계시 활동”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역사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것을 특별계시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화에게 시작된 특별계시의 역사는 아벨과 셋과 노아와 셈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들과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의 과정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말로도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말씀 계시”라고 부르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알리시는 계시의 활동들 속에서 끊임없이 말씀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역사에 나타난 모든 특별계시가 오늘날 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모든 특별계시의 내용들을 낱낱이 기록하려 한다면 이 세상에 그 모든 기록을 두기에 부족할 것입니다(요 21:25).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락하시고 그것을 신구약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신구약성경 66권 외에는 우리에게 다른 특별계시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


우리 앞에는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한 권은 자연계시의 책이고 다른 한 권은 특별계시의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참 좋은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좋은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캄캄한 방에 있는 시각장애인과 같아서 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볼 수 있는 눈과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이 눈과 빛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으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셔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하시고, 또한 어두운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주셔서 읽은 말씀을 밝히 이해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일으켜 주신 믿음으로, 성령님께서 비춰 주시는 빛으로 특별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볼 때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특별계시의 안경으로 자연계시를 바라볼 때, 비록 성경이 우주에 대한 모든 지식을 기록해 두지는 않았지만, 성경을 등불로 삼아 이 모든 영역에 대해서도 바르고 안전한 지식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주여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하며 성경을 등불삼아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힘써 살아갑시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벨직 신앙고백 제2조’(91-104)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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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위한 질문


1. “계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리시는 두 가지 방편(두 가지 계시)은 무엇입니까?




나눔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것이 성경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2. 벨직 신앙고백 제2조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곧 신자들만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한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며, 두 가지 방법 혹은 두 가지 수단으로 하나님을 압니다. 존재의 순서에 따르면(생겨난 순서에 따르면) 피조물이 말씀보다 앞서겠지만, 지식의 순서에 있어서는 말씀이 피조물보다 우선입니다. 말씀의 안경이 없이는 누구도 피조물이라는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얀 판 브뤼헌, 52-53).


신자들만이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씀의 안경이 없이는 누구도 피조물(우주)이라는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만약 말씀의 안경 없이 피조물이라는 책을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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