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조 성례
우리는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성례를 제정하셨음을 믿습니다. 이는 성례로써 그의 약속을 우리 안에 인쳐주시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해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에 이것(성례)들을 더하여 주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것들과 우리 심령 안에서 내적으로 행하신 일들을 우리의 외적 감각들에 보다 더 잘 드러내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구원을 우리 안에서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례는 내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이며,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사용하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성례는 우리를 속이고 기만하는 공허하고 무의미한 상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례가 담고 있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없이는 성례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정하신 성례의 수에 만족하니, 성례는 오직 두 가지, 곧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입니다.
은혜의 방도들을 사용하시는 성령님
성례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은혜의 방도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와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방도(수단)로 삼으셔서 우리와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가장 주된 은혜의 방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를 위한 구원자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말씀의 사역자들을 일으켜 주셔서 이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셨고, 성령님께서는 선포된 말씀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말씀에 복종하게 하시고, 믿음을 일으켜 주셔서 복음에 따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에 더하여 은혜의 방도로써 성례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은혜의 방도로써 말씀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더하여 주셨을까요?
우리의 우둔함과 연약함을 인하여 제정된 성례
벨직 신앙고백 제33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외에 또 다른 은혜의 방도인 성례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성례를 제정하셨음을 믿습니다.” 성례는 우리의 미숙함(우둔함)과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서 복음을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연약하기 때문에 성례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둔하고 연약한 인생은 복음을 듣고 복음 약속을 믿는다 하더라도, 그 믿는 내용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확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례는 은혜 언약, 곧 복음 약속의 표와 인으로써, 복음이 약속하는 바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고 확증시켜 줍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례가 없다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우리가 믿는 복음 약속의 내용들은 우리 안에서 희미해지게 되고 복음 약속에 대한 확신도 약해지고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선포된 언약의 내용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복음 약속의 내용들을 계속해서 확신하고 붙들 수 있게 하시려고 성례를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성례의 세 가지 목적
벨직 신앙고백 제33조는 성례의 목적을 세 가지로 요약해서 가르쳐 줍니다. 첫째, 주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확실함을 인치시고 보증해 주시기 위하여 성례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성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인쳐 주면서 동시에 보증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겨진 것과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와 인인 것이지, 성례가 그리스도와 우리를 자동적으로 혹은 신비하게 연합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믿음입니다. 성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확인시켜 주기 위한 표와 인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성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해주시기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례에 참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선하시고 자비하신 뜻과 은혜가 얼마나 확실하고 실제적인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거듭거듭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례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의 대상자들로 택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성례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생각하며 그리스도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성례에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신 놀라운 은혜의 역사들을 거듭 확인하며 확증 받게 됩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기 위하여 성례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지금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도, 영생도, 천국도 눈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복음이 약속하는 것들은 지금 당장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고 놀라운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가치 없게 여기고 보이는 것만 중하게 여기곤 합니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고질적인 연약함과 불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끊임없이 자라야 하며 점점 굳세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이 복음의 실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성찬을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성례에 참여할 때에 가져야 할 세 가지 태도
이러한 성례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성례에 참여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성례에 참여할 때에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사용하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 역사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례에 참여하면 자동적으로 믿음을 불러일으키거나 믿음이 굳세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성례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해 주셔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례에 참여할 때 전적으로 성령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기도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둘째, 성례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례가 담고 있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없이는 성례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례들이 담고 있는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성례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성례의 수에도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정하신 성례의 수에도 만족하니, 성례는 오직 두 가지, 곧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이 두 가지 성례만 제정해 주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해 이 두 가지 성례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신뢰하며, 두 성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성례와 같이 단순한 행위가 어떻게 계속해서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워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성례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유치하고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성령님께서는 바로 그 성례를 사용하셔서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성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벨직 신앙고백 제33조’(471-482)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학습을 위한 질문
1. 우리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도(수단)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성례’라는 은혜의 방도를 더하여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벨직 신앙고백 제33조가 요약해서 가르쳐 주는 성례의 목적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3. 성례에 참여할 때에 가져야 할 세 가지 태도는 무엇입니까?
나눔을 위한 질문
1. 우리는 한 번 세례를 받고, 이후로 일평생 성찬에 참여합니다. 두 성례는 교회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고 동일한 요소와 방식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성례는 매우 오래된 것, 단순하고 유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성례만으로 구원하는 믿음을 굳세게 하고 자라게 한다는 사실이 어리석게 여겨지고 믿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례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어떠했는지 이야기해 보고, 오늘 배운 내용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고,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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