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조 세례
우리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사람이 자기의 죄에 대한 속죄나 속상을 위하여 흘려야 했거나 흘리고자 했던 일체의 다른 피흘림을 끝마치신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피와 함께 이루어진 할례를 폐지하시고 그 자리에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세례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받아들여지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이방 종교들로부터 구별되며, 이로써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며 그분의 표와 인을 지니게 됩니다. 또한 세례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 순수한 물로 세례 받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에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것은, 마치 물이 우리에게 부어질 때에 몸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듯이, 그리고 세례에서 물이 세례 받는 자들에게 뿌려질 때에 세례 받는 자들의 몸에서 물이 보이듯이, 그리스도의 피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신자의) 영혼 안에서 내적으로 동일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보혈은 (신자의) 영혼을 죄로부터 씻어 정결하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킵니다. 이런 일은 물이라는 물질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의 뿌림으로 일어납니다. 그분은 우리가 파라오 곧 사탄의 폭정에서 벗어나 영적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반드시 건너야 하는 우리의 홍해이십니다(고전 10:1-2). 그러므로 목사는 그들의 직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성례(세례)를 베풀어주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 성례가 표시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주시니, 곧 보이지 않는 은사들과 은혜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더러움과 불의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씻어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위로로 채우시며, 아버지의 선하심을 참으로 확신시켜 주시며, 옛 사람과 그 행위는 벗겨주시고 새 사람을 입게 하십니다.
이같은 이유로 우리는, 누구든지 영생에 이르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오직 한 번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례를 반복해서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두 번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는 물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우리가 이를 받는 순간에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유익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한 번 받은 세례로 만족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신자의 자녀들의 세례(유아세례)를 정죄하는 재세례파의 오류를 배격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어린아이들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동일한 약속에 근거하여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세례를 받아 언약의 표로 인침을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신자의 자녀들의 죄를 씻으시기 위하여 그의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율법에서 명령하시기를 자녀들이 태어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였던 어린양을 바치도록 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성례가 곧바로 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하신 것처럼, 어린아이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을 나타내는 표와 성례를 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할례가 유대인들을 위하여 행했던 것을 세례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행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세례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습니다.
죄 씻음의 표와 인으로써 세례
세례는 우리가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은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눈에 보이는 표와 인입니다. 이것이 세례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에 무언가 더러운 것이 있을 때 물로 씻습니다. 이처럼 세례에서 사용되는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 정결하게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물이 우리 영혼의 죄도 씻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깨끗하게 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이 깊습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34조는 세례에 관하여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또는 보혈)”라는 표현을 다섯 차례나 사용함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과 그리스도의 피(보혈)의 관련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렇게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 씻음을 받아서 정결하게 되는 것을 나타내고 상징하는 예식입니다. 세례의 물은 우리 영혼의 죄를 씻어주시는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에 대한 ‘표’(sign)입니다(벧전 3:21).
세례는 ‘죄 씻음’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죄 씻음’이라는 이 단순한 말에 복음의 핵심이 잘 담겨 있습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에 자신이 더러운 죄인인 것과,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제사로 자신의 죗값이 대신 치러진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죄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죄의 용서를 받게 된 것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죄 씻음’이라는 말에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세례는 이 복음을 참되게 믿는 자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 씻음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감사하면서 이를 확인하고 확신하며, 이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선포하도록 주어진 성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세례를 받을 수 없고, 혹 세례를 받는다 하여도 세례가 가리키는 죄 사함의 은혜를 받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내는 표와 인으로써 세례
벨직 신앙고백 제34조는 “세례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받아들여지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이방 종교들로부터 구별되며, 이로써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며 그분의 표와 인을 지니게 됩니다. 또한 세례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렇게 참된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교회의 지체가 된 신자는 세례로써 보이는 교회에 속하게 됩니다.
세례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내는 표와 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요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셨고, 모든 믿는 자들은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세례는 신자가 불신자들과 구별되는 자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지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어 주님의 교회에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나머지 모든 사람들과 분리시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세례를 통해 성도의 하나됨을 확인하고 누리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세례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라고 하신 말씀(엡 4:5)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같은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되었고 한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을 확인합니다. 또한 세례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을 우리에게 증거하면서 믿음의 큰 담력과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은혜언약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풍성한 위로와 유익을 주는 세례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것의 실체를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목사는 눈에 보이는 예식인 세례를 베풀지만, 주님께서는 세례가 상징하고 표시하는 바로 그 실체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에서,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더러움과 불의를 씻으신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위로로 채워주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과, 우리로 하여금 옛 사람과 그 행위는 벗어버리게 하시고 새 사람을 입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바라보고 확신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유익들이고, 세례가 나타내고자 하는 실체입니다. 세례는 바로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확신시켜 줌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에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세례는 우리의 일생에서 단 한 번 받는 것이지만 세례의 유익은 우리의 일평생 지속됩니다. 교회에서 세례식이 거행될 때마다 우리는 이러한 세례의 의미들을 모든 성도들과 함께 새롭게 되새기고 거듭 확신하며 소망하게 됩니다.
은혜언약의 표와 인으로써 세례
벨직 신앙고백 제34조는 유아세례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고백으로 세례에 대한 조항을 마무리합니다. 성인들의 세례에 관해서는 신약성경에 많이 언급되지만, 유아세례는 그렇지 않아 의견이 분분합니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례는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자가 받는 것이고, 유아는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구약의 할례를 대신하여 신약의 세례가 주어졌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례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모두 은혜언약의 표와 인으로써 주어진 것입니다. 할례와 세례는 모두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우리의 죄 사함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서로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하여 그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녀임을 나타냈습니다. 은혜언약의 의미를 알고 믿지 못해도, 그들이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구약의 할례를 대신하여 은혜언약의 표와 인으로써 주어졌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세례를 베풂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것을 표시해 주어야 합니다. 세례는 믿는 자들을 위해 주어진 예식이요, 언약 공동체를 위해 주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세례는 무엇입니까? 세례는 씻는 예식으로, 세례는 죄 씻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자, 그리스도의 피로만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음을 복음으로 듣고 믿는 자들은 세례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에서 우리는 우리가 죄인인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례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의 모든 더러운 것에서 씻음 받은 것을 생각하며, 또한 우리가 파라오 곧 사탄의 폭정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하며 풍성한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라고 하는 단순하고도 거룩한 예식을 통해서 복음의 이러한 충만한 내용들을 거듭 확증 받을 수 있습니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벨직 신앙고백 제34조’(483-498)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학습을 위한 질문
1. 세례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주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요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것의 실체를 바라보게 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하고 많은 위로와 유익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에서 우리에게 바라보고 확신하게 하시는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나는대로 모두 말해보세요.
나눔을 위한 질문
1. 성경에서 세례는 믿음을 고백하는 신자에게만 베풀어졌다고 말하면서, 유아는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에 근거하여 세례의 정당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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