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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직 신앙고백] 제6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 작성자 사진: Lee Juman
    Lee Juman
  • 2024년 3월 23일
  • 4분 분량

제6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우리는 이 거룩한 책들을 외경들, 즉 에스드라3,4서, 토빗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시락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풀무불 속의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서 상하와 구별합니다. 교회는 정경에 일치하는 한에서만 이 책들을 읽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은 우리가 그 증거를 토대로 믿음이나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확증할만한 그 어떤 권위나 효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이 외경은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데 사용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정경 외에도 외경이 있다


정경이란 어떤 책이 ‘진짜 성경’인지를 표시하는 용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경이 아닌 범주에 속한 책들도 있을 텐데요, 그러한 책들 가운데 ‘외경’이 있습니다. 외경은 우리가 보통 ‘신구약 중간기’라고 부르는, 구약성경의 기록이 끝나고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까지의 중간 시기에 주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책들 가운데 약 14권의 책들을 가리켜 ‘구약 외경’ 또는 ‘외경’(Apocrypha)이라고 부릅니다. 이 14권의 책들이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 14권의 책들이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 Septuagint]에 포함되면서부터입니다. [70인역]은 나중에 히에로니무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었는데, 불가타 성경(또는 벌게이트 성경)이라고 부르는 그 성경에도 이 14권의 책들이 포함되었고, 그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외경의 책들 대부분을 [제2정경]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받아들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외경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외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외경의 위치와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귀도 드 브레는 외경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따라 벨직 신앙고백 제6조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외경은 우리가 그 증거를 토대로 믿음이나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확증할만한 그 어떤 권위나 효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이 외경은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손상시키는데 사용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외경의 책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벨직 신앙고백 제6조는 외경의 목록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스드라3,4서, 토빗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시락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풀무불 속의 세 청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서 상하. 각각의 책들에 관한 간략한 소개는 교재(벨직 신앙고백 해설, 144-146)를 참고하세요.



외경은 왜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우리는 왜 외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역사적 이유입니다. 외경은 역사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외경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외경을 자신들의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외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신 적이 없고 그 권위를 인정하신 적도 없습니다.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히에로니무스도 불가타 성경의 서문에서 외경을 “교회의 책”이라고 정경과 구분하여 언급하였으며, 이 책들에 대하여 “읽어서 신앙에 유익하지만 교리를 도출하면 안 된다”라고 하여, 외경의 역할과 권위를 제한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교리적인 이유입니다. 외경에는 신구약 66권의 전체적인 가르침과 맞지 않는 교훈들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토빗서 6장에는 천사가 물고기의 염통과 간으로 악마를 퇴치하는 데 쓸 것이라는 미신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마카비서 하 12장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와 제사를 옹호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로마 가톨릭교회가 연옥설의 근거로 삼았던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는 교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경은 그 교리적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외경의 내용들 중 일부가 신약성경에서 인용되었다고 주장하며 외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단순히 인용되었다고 해서, 그 자료들이 모두 정경의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헬라 시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고(행 17:28), 서신서 가운데 외경의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는 위경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암시하는 듯한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정경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혹 외경의 한 두 구절을 인용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외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를 성립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외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외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외경은 우리가 절대로 보아서도 안 되고 만져서도 안 되는 금서입니까? 외경은 거짓말로만 가득한 책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외경이 완전히 거짓말로 가득한 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경을 대할 때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외경을 읽을 때에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면서 읽지는 말아야 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6조가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외경은 우리의 믿음을 규정짓고 세우고 굳세게 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확증할 수 있는 권위나 효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정경에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만 외경에서 여러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6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교회는 정경에 일치하는 한에서만 이 책들을(외경) 읽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을 가지고 외경을 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외경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책들을 읽을 때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입니다. 외경 중에 어떤 내용은 신약성경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외경에 사용된 단어와 표현이 성경에 사용된 단어와 표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셋째, 우리는 외경을 읽을 때에 정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교훈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6조는 “외경은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데 사용될 수는 더더욱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구약성경)과 주 되신 구주께서 … 사도들로 밀미암아 명하신 것(신약성경)”(벧후 3:2)만을 굳게 붙듭시다.



우리는 외경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주장들 속에 감추어진 비진리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진리가 우리의 믿음과 실천을 규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가운데에서 굳게 서게 해달라고 은혜를 구합시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벨직 신앙고백 제6조’(141-152)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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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위한 질문


1. ‘외경’이란 무엇인가요?



2. 외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눔을 위한 질문


1. 벨직 신앙고백 제6조는 정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인정하면서도, 정경에 일치한다는 한계 안에서 외경을 읽고 교훈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벨직 신앙고백의 작성자인 귀도 드 브레는 순교하기 두 주 전인 1567년 5월 19일 자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약의 외경 중 하나인 마카비서 하 7장에 기록된 한 용감한 어머니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7명의 자녀가 순교자가 된 어머니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아들을 순교자로 두게 될 어머니의 영광을 이야기하며 위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드 브레의 저술들에 외경을 인용한 부분이 총 48회가 된다고 합니다(Wes L. Bredenhof). 그는 정경에 일치하는 한에서 외경을 읽고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외경을 읽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모든 책과 글에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교과서, 소설, 자기계발서, 신문과 잡지, SNS에 올려진 글과 영상 등을 읽고 볼 때, 여러분은 성경에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고 교훈을 받고자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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