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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사도신경 해설(10) :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사도신경 제10항은 ‘죄 사함’에 관한 고백입니다. ‘죄 사함’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누가 감히 용서할 수 있을까요?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2에서 예수님은 침상에 실려온 중풍병자를 향해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이심을 밝히셨고, 또 침상에 실려온 중풍병자에게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죄 사함의 은혜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그 하나님을 거스른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며,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아는 사람에게 ‘죄 사함’만큼 큰 은혜는 없습니다.

죄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제레마이어 버로우즈라는 청교도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덤벼들면서 그분이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도 사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침투해 ‘내 정욕을 버리기보다 정욕을 마음껏 발산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 정욕을 버리기보다 하나님을 더 이상 하나님으로 여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이 사악함에 대해 과연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옳을까?” 이런 사악한 죄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 죄의 결과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문이 잘 가르쳐 줍니다. “죄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엄위를 거슬러 짓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 죄에 대해 최고의 형벌, 곧 몸과 영혼에 영원한 형벌을 내릴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사악한 죄인이고, 그래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만 ‘죄 사함’의 은혜가 복음(기쁜 소식)이 되고,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는 예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2. 죄 사함의 근거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죄 사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죄 용서의 ‘근거’ 때문에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된 본성도 기억하지 않으시고, 그에 대해서 정죄하시거나 형벌을 내리시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 용서에 대한 유일한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그분이 그리스도(메시아)로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사 53:4-6, 롬 4:25, 갈 3:13).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셔서, 우리의 자리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실제로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신비한 연합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도신경에서 교회와 성도의 교제에 이어 죄 사함을 고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 사함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죄 사함”이 있음을 선언해야 합니다. 이 일은 보통 복음의 설교를 통해 선언되기도 하지만, (우리 교회와 같이) 예배 순서에 “사죄를 위한 기도”와 “사죄의 복된 말씀”(혹은 사죄의 선언)이라는 순서를 통해서 시행하기도 합니다.


3. 죄 사함 받은 사람의 삶 : 감사하고 용서하는 삶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에 근거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그것은 ‘감사’와 ‘용서’의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가 이토록 큰 은혜라면,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의 마땅한 반응은 ‘감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감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신자는 무엇을 하든지 감사함으로 하게 됩니다. 이제 그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더 잘알아가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순종하는 것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다 감사의 표현일 뿐입니다. 때때로 인생의 고비나 불행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신자는 감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삶 전체가 죄 사함의 은혜로 인한 감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 내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잘못했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일흔 번씩 일곱 번 정도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나에게, 죄를 지은 만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정도를 탕감해 주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용서하지 못한 종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은 것은 기뻐하면서, 정작 나는 작은 잘못 하나도 용서하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내용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의 의미는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용서를 실천할 때,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 경험하고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인 교회는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감사와 용서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문제도 많고 어려움도 많지만, 감사가 더 많아야 합니다. 갈등과 상처가 많지만 용서가 더 많아야 합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교회는 감사와 용서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묵상과 기도

죄인에게 가장 긴급한 필요는 죄 사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근거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합당한 반응은 감사와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죄 사함의 은혜를 묵상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감사와 용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더 나아가 교회적으로도 더욱 감사함으로 서로 용서하여서, 죄 용서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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