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Juman
사도신경 해설(12) :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제12항은 사도신경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이 땅에서 우리의 믿음의 경주 끝에 영생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영원과 잇대어 있다는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참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소망을 주는 사도신경의 마지막 조항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무의미한 질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생이란 말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 아닌가요? 따라서 우리가 정말 궁금한 것은 영생의 의미가 아니라 영생을 얻는 방법일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잘 안다고 생각하여 그 영생을 얻고자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영생에 대해서 사실 우리가 잘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영생을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요한복음 17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묘한 말씀이지요?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생이 ‘삶’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앎’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 그 사람을 경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아는 것이란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귐입니다.”
영생이 하나님과 사귐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생명’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근원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명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생명이 있으려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사실이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에 잘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마다 각각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공급받아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을 때만 생명이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곧 영생입니다.
2. 영생인 것 같지만 영생이 아닌 것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지요. 이것이 죽음입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잘려나갈 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잎이 시들고 말라가는 것은 그 결과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상태가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 없이 영원히 사는 상태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바로 지옥이지요. 겉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과 비슷해보이지만 실제로 죽어서 욕구만 남은 ‘좀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영원히 사는 것도 영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건 영생이 아닙니다. 영원히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음의 형벌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22-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그룹들과 불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하게 될까 염려하시고 막으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속자 없이, 자기 스스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 타락한 상태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은 영생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타락한 것처럼, 스스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요 오산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영생을 얻으려는 것,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는 무산될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스스로 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3. 영생을 얻는 길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이것을 말합니다(3:16, 36; 5:24; 6:40, 47, 51, 54; 10:28; 11:25-26; 17:2).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요(요 17:3),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입니다(요 3: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복된 사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에 이르는 길인 동시에 생명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신 이유는 참된 생명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이 바로 우리의 빛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신의 죄와 비참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알지 못하여, 이런 죄와 비참을 안고 영원히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간절히 바라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과 기쁨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로 나오십시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알아가고, 묵상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그것이 지금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는 길입니다. 영생은 죽은 다음에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영생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영원”이 우리의 시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비록 지금 우리는 눈물 골짜기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묵상과 기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합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의지합시다. 이 은혜를 구하며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