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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사도신경 해설(2)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제네바 요리문답 31문은 사도신경 제2항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의 구주로 인정한다는 것과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해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두번째 고백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시고, 어떻게 우리의 구원이 되셨는지 알고 믿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1.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이 이름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단순히 이런 소망과 기대의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친히 이 이름을 주시며, 바로 이 사람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는 단순히 구원을 소망하는 이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직분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선지자, 제사장, 왕’은 기름을 부어 임명하여 그 직분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 곧 선지자와 제사장, 왕은 장차 오실 진정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대한 모형(type)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진정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온전히 계시해 주시는 선지자이시고, 완전한 희생제사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신 제사장이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는 영원한 왕이십니다(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1문).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인정하고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나는 가련하고 연약하고 무력하고 절망적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자,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2. 나는 “그분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곧 외아들(독생자)입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성육신 이전에 이미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존재하지 않으셨던 적이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하나님의 독생자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요 14:6).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히 2:10)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들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기 때문입니다(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3문).


3. 나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당시 “주”(Lord, 主)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로마 황제에 대한 칭호였습니다. 절대적인 통치권, 소유권, 더 나아가 신성을 가진 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Lord, 主)의 특성상 한 하늘 아래 두 주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목숨을 건 고백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나의 주님”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호칭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감히 부를 수 없어서, 대신 “나의 주님”(아도나이)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부른 것은, 명백하게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부르는 것은 핍박을 불러오는 고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나에게 불이익이 닥칠 때,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고백은 의미없는 고백에 불과할 것입니다. “주여”는 명령할 때 부르는 이름이 아닙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주인님의 명령에 복종할 자세를 갖추어야 부를 수 있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 우리의 신앙을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내용에 관한 것이라면 틀린 비난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태도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단호함과 인격의 독선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상과 기도

1.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31-32문(시편찬송 397p)을 읽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라는 고백은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정말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까? 내가 주인삼은 다른 것들, 주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들은 없었습니까?

3. 감염병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마저 더해져 그리스도인들은 더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와 주가 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묵상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자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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