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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사도신경 해설(3)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사도신경 제3항은 그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는가에 관한 고백입니다. 이것을 ‘성육신’(incarnation) 교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육신 교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지,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이신지 가르쳐 주고, 또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지만 어떻게 죄 없는 사람이 되셨는지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그 여자의 후손(창 3:15; 사 7:14)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보여주는 징조가 되는 사건으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것은 초자연적인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임을 가르쳐 줍니다.


1. 성육신은 신비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말은 사람의 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잉태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잉태되셨지만, 뱃속에서 자라서 태어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다른 모든 아이들과 같은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탄생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드님께서는 참되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를 중단하지 않으시면서도 완전한 인간성을 취하실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오늘날 현대인들은 신화에 불과하다며 무시합니다.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뿐만 아니라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하나님이라니 믿을 수 없겠지요.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성육신의 신비를 자신의 삶을 걸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요셉은 약혼한 여인의 뱃속에 내가 모르는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고 조용히 파혼하려 했지만 천사의 계시를 통해 이 일을 믿음으로 그리고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 역시 부정한 여인이라고 부당하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믿음으로 그리고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믿음인지요!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육신은 더욱 믿기 힘든 교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성육신만큼 신비한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 또한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2. 성육신은 고난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영광입니다. 예수님께는 어땠을까요? 빌립보서 2장 5-8절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성육신을 바라본 것이데, 분위기가 많이 무겁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성육신은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고, 종의 형체가 되는 일이었고, 자기를 낮추시는 일이었습니다. 불편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피조물이며 죄인인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예수님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만 가도 얼마나 불편한지요.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는 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낮아지셔야 했을까요? 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셔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3)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도 성육신은 기쁨이요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3. 성육신은 복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만 발견하지 못합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며 높은 곳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격과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격과 조건을 갖춰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격과 조건을 갖출 수 없는 무능력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있는 낮은 곳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우리가 있는 낮은 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위해 우리 자신을 높이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낮을 곳을 바라보고 낮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바라보고, 우리를 찾으러 낮은 곳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육신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낮아지셨습니다. 그렇게 낮아지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셨기에 낮아지셨습니다. 기꺼이 종이 되어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아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종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낮아질수록 우리는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성육신은 고난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셨기에 고난을 감수하셨고, 사랑하셨기에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실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우리도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고, 종이 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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