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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4] 예수님의 고난당하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어요!

  • 86kjoon
  • 2024년 1월 30일
  • 3분 분량
읽을말씀
그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면서도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바른성경, 빌립보서 2장 6-8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그런데 예수님이 빌라도에게만 고난을 받으신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을 고백할 때, 그것은 전생애적이며 전인격적입니다. 성육신에서부터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갇힐 때까지, 예수님의 모든 삶이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빌라도 총독은 로마의 관리로서 그리스도의 사건을 재판하던 재판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고 죄를 받으셨습니다. 처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분의 무죄하심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장로,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자, 그는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기로 하고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정죄하였고, 죽였습니다. 이것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고백의 의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심’을 믿습니다]

곧이어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무엇보다 이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단 한 가지를 바라보게 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는 “오직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중심은 오직 우리를 죄로부터 건지시는 구속, 곧 십자가에 있습니다.

     

1) 십자가에서 죽으심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죽으셔야만’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죄인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와의 화해는 오직 ‘대속 제물의 죽음’만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며,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레 17:11; 히 9:22).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작정하셨습니다(엡 1:4).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그러나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자기 자신을 온전한 속죄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혹 우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일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잊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눅 22:42)고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무거운 일이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셨던 것은 십자가라는 형벌 자체가 주는 육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곧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었습니다(신 21:23; 갈 3:13; 벧전 2:24).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 ‘저주 받은 자’가 되심으로, 우리는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고,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고백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으셨다.”는 고백입니다.

     

2) 장사되심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 사흘 동안 죽음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명확하고 확실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못 박히심과 죽으심과 장사 지내심을 통해 친히 무덤으로 들어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생각하기]

때로 십자가는 어떤 하나의 ‘기독교적’ 표시 정도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신 고통은 어떤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고통 정도로 여겨집니다. 또 우리 삶의 고난과 고통을,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고통에 비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감히 우리가 체험해 보거나 우리 삶의 어떠한 부분에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받으셨던 고통은 아버지로부터 완전하게 버림을 당하고 저주 받아 죽어야 하는 음부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는 그 누구도 결코 예수님의 고난당하심과 죽으심의 깊이를 이해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 때문입니다.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시고, 저주를 받으셔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는 거룩함을 얻고 영원히 온전하게 되었습니다(히 9:26; 10:10, 1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찢기신 육체’가 우리의 유일한 ‘새로운 살 길’이요, 우리는 오직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로 담대히 들어갑니다(히 10:19-20).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진노의 잔을 마시고, 우리는 구원의 잔을 마신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옥을 경험하시고, 우리는 천국을 얻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가 된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저주를 주었고, 우리에게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바라보며, 찬송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고난당하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찬송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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